[부시 새로운 4년] 세계 반응 - 3. 유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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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정서가 지배적인 유럽에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재선에 실망하면서도 한층 힘이 세진 부시 정부에는 신중한 모습이다. 유럽연합(EU) 정상들은 5일 "세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부시 정부와 긴밀히 협력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유럽 각국의 입장은 미국과의 친밀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 영국 등 친미 3국=이라크 전쟁 참전으로 국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온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부시의 재선으로 전쟁 명분이 간접 확인되는 효과를 봤다. 부시 당선 이후 블레어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겨냥, "미국이 부시를 선택한 것을 세계는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미국도 세계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며 조정역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라크 참전국인 이탈리아.폴란드 등도 비슷한 입장이다.

◆ 프랑스 등 반미 3국=시라크는 지난 3일 부시와 직접 통화하는 대신 편지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과의 향후 협력은 대화와 상호 존중의 정신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인사말은 외교적 관례에 따른 덕담보다는 거북한 충고로 읽혀졌다. 시라크는 5일 EU 정상회담에선 "강한 미국에 따라 유럽도 정치.경제적으로 강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스페인은 다소 부드럽지만 프랑스와 한 배를 타고 있다. 3국 정상은 별도 모임에서 "(유럽을 하나로 만드는)EU헌법의 통과를 위해 공동노력한다"는 데 합의했다. 미국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이 뭉치자는 뜻이었다

◆ 부시의 화해 제스처=부시는 당선 직후 블레어와의 통화에서"(블레어가) 기자회견에서 (부시를 향해) 유럽과의 관계개선을 촉구하는 발언을 해도 좋다"고 양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는 6일 재선 확정 후 첫 라디오 연설에선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등 우방과 협력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라크 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하고, 유럽이 중국에 대한 무기금수 조치를 해제하려는 것을 막자면 유럽과의 관계개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런던.베를린.파리=오병상.유권하.박경덕 특파원

*** 유럽 국제정치 전문가들 "미국.유럽 관계 회복 쉽지 않을 듯"

유럽의 많은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미국 중심 일방주의가 계속될 것"이란 이유로 미.유럽 관계가 원만치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미니크 다비드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 선임연구원은 "미.프랑스 관계는 부시와 시라크 대통령의 사이가 나쁜 만큼 계속 좋지 않을 것"이라며 "부시는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해 군대를 더 보내려 할 것이기 때문에 유럽과 미국의 간격이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평양 주재 영국 대리대사를 지낸 제임스 호어 박사는 "미국은 세계를 '선과 악'으로 양분하고, 때로는 석유 등을 값싸게 구하기 위해 겉으로 도덕.인권을 내세워 세계에 개입해 왔다"고 지적하고 "이 같은 미국 외교가 계속될 것이므로 이를 비판해온 나라와 관계개선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블레어 총리의 영국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영국도 미국과의 우호 관계를 통해 영향력 행사를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르쿠스 티드텐 독일 국제안보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부시도 동맹국들의 협조 없이는 혼자 처리할 수 없는 외교안보 사안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으므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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