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접고 … ‘SK 날개’ 아래로 모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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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각 회사는 스스로 생존조건을 갖춰라.”(2002년)

“우리가 가진 지혜와 끈기를 모아야 한다.”(2010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말이다. 8년 전과 지금의 강조점이 전혀 다르다. 최 회장의 말만 달라진 것은 아니다. SK그룹의 운영 방식도 ‘각개약진’에서 ‘시너지 경영’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SK 날개’ 밑으로 집합=SK그룹은 8월 첫 그룹 포털을 만든다. 그간 계열사별로 운영하던 사내 인트라넷을 합치는 작업이다. 삼성의 인트라넷인 ‘마이 싱글(my Single)’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SK그룹 관계자는 “그룹 차원의 시너지를 높이려면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며 “각 회사의 스토리(이야기)를 공유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7월에는 중국에 진출한 13개 계열사의 현지법인을 통합해 ‘SK차이나’를 출범한다. SK는 그간 야심차게 추진한 중국 사업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룹의 중국 관련 역량을 모두 모아 돌파구를 열겠다는 전략이다. SK차이나 초대 총괄사장은 그룹 지주사인 SK㈜의 박영호 사장이 겸직한다. 그는 최태원 회장이 무척 아끼는 사람이다. 통합법인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이다.

SK는 2003년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 및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태로 위기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각개약진 문화가 더 강해졌다. 하지만 생존을 걱정할 단계가 지나자 이번엔 계열사의 ‘독립심’이 너무 강한 것이 문제가 됐다.

최태원 회장이 2005년 ‘따로 또 같이’를 경영 원칙으로 제시한 이유다. 각 사가 독립 운영이 가능할 정도의 경쟁력을 갖추되 힘을 합칠 필요가 있을 땐 합치자는 것이다.

최근엔 ‘따로’보다는 ‘또 같이’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고 있다. SK그룹이 2008년 말 주요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맞바꾸는 대규모 인사를 했던 것도 이를 위한 준비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회사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CEO가 되면 아무래도 협조가 잘될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한 내부 행사에서 “(각 회사가) 혼자 살 수도 있지만, 힘을 합치면 생존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용 줄이고, 효과 높이고=SK건설은 지난해 6월 지주회사 체계에 들어왔다. 그동안은 SK케미칼이 대주주였다.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는 올 들어 SK건설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일제히 올렸다. SK건설은 지난달 에콰도르의 초대형 정유공장 기본설계 용역을 수주할 때도 그룹 덕을 봤다. SK건설 관계자는 “에콰도르 국영기업 사람들을 SK에너지 울산공장에 데려갔더니 신뢰도가 확 올라가더라”고 말했다.

SK에너지·SK케미칼 등 울산에 공장이 있는 5개 회사는 지난해 폐기물의 공동 처리·활용에 합의했다. SK그룹은 이를 통해 연 700억원 정도를 아낄 수 있게 됐다. 마케팅에서도 ‘콤비 플레이’가 성과를 내고 있다. SK텔레콤·SK에너지·SK네트웍스는 지난해 동부화재와 손잡고 무료 통화와 주유·정비 할인 혜택을 주는 자동차보험 상품을 내놓았다.

그룹의 주력사인 SK에너지와 SK텔레콤은 지분을 절반씩 가진 ‘SK마케팅앤컴퍼니’란 회사도 세웠다. 계열사 등의 상품·서비스에 대한 통합 마케팅을 하는 회사다. 2008년 출범한 이 회사의 매출은 첫해 1333억원에서 지난해 3158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룹 관계자는 “지금은 업종 간 경계가 엷어지는 ‘산업융합’ 시대”라며 “앞으로도 시너지를 높이는 전략을 계속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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