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축구는 돌고 도는 인생 축소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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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인생은 돌고 돈다. 오늘이 어렵다고 내일도 어려운 것은 아니다. 축구도 돌고 돈다. 최고의 축구 스타 지네딘 지단의 지난날을 보면 '축구는 돌고 도는 인생의 축소판' 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세계 축구팬들은 지단의 이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려 6천5백만달러, 약 8백19억1천7백50만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이적료 때문이다. 여기에 연봉은 4년간 5백만달러(약 62억5천만원)다. 입이 벌어지는 엄청난 몸값을 기록하며 지단은 이탈리아 유벤투스에서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갔다.

3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998년 월드컵 당시 프랑스는 개최국의 이점과 화려한 멤버, 특히 유럽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지단에 대한 기대 때문에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프랑스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예선 첫 경기인 남아공전에서 3 - 0 낙승을 거뒀고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도 4 - 0으로 손쉽게 승리했다.

문제는 지단의 부진이었다. 지단은 두 경기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허둥댔다. 사우디전 후반 26분 퇴장당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난리가 났다. 불필요한 흥분으로 퇴장한 지단에 대한 질책과 예선 마지막 경기인 덴마크전에 대한 걱정이 방송과 신문을 뒤덮었다.

다행히 프랑스는 덴마크를 2 - 1로 어렵게 이겨 조1위로 16강에 올랐다.

파라과이와의 16강전은 프랑스인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전.후반이 0 - 0으로 끝났다. 연장 전반 14분 블랑이 헤딩골을 터뜨려 천신만고 끝에 8강에 진출했다. 이 때도 지단은 스탠드에서 가슴을 졸였다. 퇴장으로 두 경기 출전정지를 먹었기 때문이다.

지단은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 투입됐지만 헛발질만 해댔다. 승부차기로 4강을 다투는 상황에서 지단은 첫번째 키커로 나서 킥을 성공시켜 체면치레를 했다. 크로아티아와의 준결승전에서도 지단의 몸은 무겁기만 했다. 슈팅은 체중이 실리지 않아 땅볼로 가기 일쑤였다. 수케르에게 선취골을 뺏겼으나 수비수 튀랑이 두 골을 넣어 프랑스는 결승에 올랐다.

시련이 지나간 걸까. 브라질과의 결승전은 지단을 위한 날이었다. 슈퍼 스타를 아껴뒀다가 결정적일 때 쓰려는 신의 뜻인 듯 지단은 펄펄 날았다. 전반 28분과 후반 1분 지단은 코너킥을 받아 번개같은 헤딩골을 터뜨려 영웅으로 거듭났다.

프랑스월드컵 당시 지단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지난해 레알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에서 피구를 영입할 때 지급한 5천6백만달러(약 7백억원)의 기록은 깨지지 않았을 것이다.

신문선 <본지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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