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여윳돈 풀어 사회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61호 30면

구학서 신세계 회장

Q.윤리경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요? 윤리경영의 외연을 너무 확장하는 것 아닌가요? 다른 회사와의 경쟁이 극심해지면 윤리경영을 좀 유보해도 되지 않나요? 윤리경영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경영을 담보할 수 있습니까? 시민사회가 기대하는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을 충족시키려다 너무 높은 비용 부담으로 성장이 둔화할 수도 있지 않나요?

경영 구루와의 대화편 구학서의 윤리경영 ⑤

A.윤리경영의 범위는 아무리 확대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윤리경영은 기업 내부의 부정을 몰아내고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상생을 넘어서 시장경제를 보완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설파했듯이 자본주의는 인간의 삶의 질을 고려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본주의 경제 자체의 모순을 해결할 순 없지만 이를 완화할 수는 있습니다. 정부도 역할이 있고 개인도 기부 등을 통해 이런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저는 경제의 주체인 기업이 이 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업이야말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만일 자본주의 체제가 흔들리면 기업도 위태로워지기 때문이죠.

즉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고 나아가 발전하려면 기업이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부가가치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윤리적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확대재생산을 통해 경제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확대재생산도 무한정 지속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단적으로 인구가 줄어들면서 생산능력 과잉 상태에 빠진 업종이 상당히 많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기업에 현금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수종 사업을 찾기는 어려운 실정이죠. 쌓인 여유 자금을 어디에 쓸 건지는 전적으로 기업이 결정합니다. 저는 이 돈을 양극화 같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완화하는 데 썼으면 합니다.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사회 문제, 환경 문제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겠죠. 이렇게 되면 기업에 대한 사람들의 정서적인 반감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결과적으로 기업하는 환경도 좋아지겠죠.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자본주의 경제가 위기에 봉착한 게 아니냐는 반성이 있었습니다. 그런 위기감이 들수록 윤리경영을 해야 합니다. 시장경제를 보완하고 자본주의를 지속 가능한 체제로 만들려면 기업들이 반드시 윤리경영을 해야 합니다. 만일 기업들이 모두 자사의 이익만 추구하고 비윤리적으로 행동한다면 자본주의 체제도 결국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경쟁이 극심해지면 윤리경영을 오히려 강화해야 합니다. 윤리경영을 한다고 해서 이익이 적게 나는 것도 아니거니와 절대로 경쟁에서 불리해지지 않기 때문이죠. 윤리경영은 궁극적으로 이익을 더 내고 그래서 늘어난 이익을 더 많이 나누자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경쟁이 치열할수록 윤리경영을 강조해야죠. 경쟁이 좀 심해졌다고 해서 윤리경영을 적당히 하면 안 됩니다. 그러다 무너지면 그 타격이 훨씬 더 큽니다.

윤리경영이 지속 가능한 경영을 담보하는지는 신세계의 실적이 말해 줍니다. 윤리경영을 한 후로 신세계는 브랜드 가치와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저희는 신세계의 브랜드 가치 상승에 윤리경영이 50% 이상 기여했다고 봅니다.

지속 가능한 경영의 첫째 조건이 이윤을 창출해 경제적으로 지속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적자를 내는 회사가 직원들 상여금 주고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그러다 분식결산한 끝에 공적자금이 투입된다면 경제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죠. 시민사회의 요구에 부응했는지 몰라도 기본을 못 한 거죠. 이익을 내 급여를 지급하고 합법적으로 세금 내는 건 기업으로서 기본입니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부가가치를 윤리적으로 배분해야죠. 기부를 할 때도 이익의 몇 %를 한다는 식의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보수를 정하는 데도 윤리적인 고려가 필요합니다. 선진 기업들도 그렇고, 국내 대기업들도 이제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원) 제도를 실시하는 회사가 거의 없습니다. CEO에게 스톡옵션을 주는 목적은 주주의 이익과 CEO의 이익을 일치시켜 주주총회에서 선출된 CEO로 하여금 기업 가치를 높이게 하려는 것입니다. 한때 좋은 제도라고 알려져 너도나도 도입했지만 결과적으로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사내 특정 인사들,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집단만 혜택을 누리다 보니 조직에 상대적인 박탈감이 생겼습니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커지면 조직이 잘 굴러갈 수가 없죠. 주주가 뽑은 임원이 경영 성과를 내 기업 가치를 올리는 건 사실 당연하고, 또 실적이 좋으면 주가는 당연히 오르게 돼 있습니다.

신세계는 스톡옵션을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10만 주를 받아 스톡옵션을 행사한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해 보니 그 돈이면 전 직원에게 100%의 성과급을 지급하고도 남더라고요. 일본의 도요타 같은 회사엔 CEO의 급여에 관한 내부 규정이 있습니다. 구성원 평균 급여의 20배를 초과하지 않도록 한다는 일종의 불문율이죠. 이 정도면 제대로 보상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미국 기업이나 한국 기업에 이런 규정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습니다. 물론 기여도를 따지면 20배 이상 차이가 날 수도 있습니다. 경영진의 적절한 의사결정으로 2000배의 이익이 날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CEO의 급여를 그만큼 높게 책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통념에 맞지 않기 때문이죠. 일본 경제가 강한 것은 이런 통념이 지켜져 조직이 안정되고 계층 간에도 갈등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이익이 많이 나면 그에 따� 성과급을 받으면 됩니다. 주가를 올려놓았다고 해서 그 주가에 대해 일정 주식 수만큼 돈을 받는 건 타당치 않습니다. 주가는 당기 실적, 장래의 수익가치 말고도 현금 유동성, 투기적 요인 등 해당 기업의 실적과 관계없는 여러 요인에 의해 움직입니다. IMF 체제 당시엔 폭락했고 금융위기 때도 크게 출렁거렸죠. 이렇게 주가가 숱한 요인에 의해 움직이는 데도 주가가 떨어졌을 땐 아무 책임도 안 지고 올라가면 혜택을 주는 게 스톡옵션 제도입니다. 결국 다 회사 비용이죠. CEO 개인의 이익, 나아가 특정 소수 집단의 이익을 챙기는 결정을 의사결정권을 쥔 사람들이 하다 보니 이런 제도가 만들어진 겁니다. 절대다수의 이익을 위한 제도를 구상했다면 이런 제도가 생겼을 리 없죠.

스톡옵션을 받은 임원들이 주가에 지나친 관심을 쏟다 보니 무리한 자사주 매입, 허위 공시, 주가 조작, 분식결산 같은 유혹에 빠지는 겁니다. 오죽하면 과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스톡옵션은 CEO의 탐욕이라고 했을까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