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수도이전 대안 '행정특별시'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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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이 헌법재판소(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중단된 신행정수도 건설의 대안으로 청와대와 국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행정부처와 정부기관을 옮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8일 여권 핵심관계자가 밝혔다. 또 위헌 소지를 피하기 위해 헌법재판소가 수도 규정의 필수요소로 지적한 청와대와 국회는 이전 대상에서 제외하되 대법원.헌재 등 헌법기관을 추가로 이전 대상에 포함해 그에 따른 수도권 분산 효과의 감소 요인을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열린우리당 고위관계자는 이날 "충청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청와대.국회를 제외한 나머지 헌법기관을 이전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아, 이를 청와대와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권 핵심인사도 "기존 신행정수도특별법을 손질해 사용하든, 새 법안을 제출하든 헌법기관들의 이전은 자체 결정과 국회 동의절차를 거치면 된다"면서 "공청회 등을 거쳐 헌법기관 이전에 대한 여론 수렴에 착수할 것"이라고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열린우리당의 다른 한 관계자는 "신행정수도의 정책 대안 명칭은 '행정특별시'가 유력하다"며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마무리되는 다음달 8일 이후 대통령이 직접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 강동석 장관은 지난 7일 '당.정.청 경제워크숍' 비공개회의에서 "헌재 결정문을 보면 '국회와 청와대가 있는 곳이 수도'라고 했다"면서 "국무총리나 행정 각 부,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관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이 같은 방침을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는 지난 7월 이전 대상 기관 발표 때 '천도(遷都)' 논란 등을 감안, 대법원 등 헌법기관은 자체 판단을 존중키로 했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위헌 결정문에서 "대통령의 소재지를 수도의 특징적 요소로 보는 한 정부 각 부처의 소재지는 수도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고 볼 필요가 없고, 헌법재판권을 포함한 사법권이 행사되는 장소도 수도를 결정하는 필수 요소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수호.김선하 기자

[뉴스분석] "청와대·국회 있는 곳이 수도" 헌재 결정문서 대안논리 찾아

수도 이전이 좌절된 뒤 노무현 대통령 주변에선 세 가지 대책이 논의돼 왔다. 우선 헌법개정이나 국민투표를 통해 수도 이전을 강행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것이라는 여론에 밀려 포기했다.

둘째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바꾸는 일이다. 대통령과 국회가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을 최대한 활용해 덜 보수적이고, 더 자유주의적인 성향의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을 임명하겠다는 것이다. 재판관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한다는 내용도 있다(본지 10월 28일자 1면). 이 대책은 현재 진행형이다.

셋째가 대법원.헌법재판소의 충청권 이전 대책이다. 여권은 이 대책의 근거를 헌재의 결정문에서 찾았다. 결정문엔 청와대와 국회가 있는 곳이 수도이며, 사법기관은 수도 이전과 관계없다는 취지의 내용이 들어 있다. 두 헌법기관(청와대.국회)의 이전이 위헌이라면 다른 헌법기관(대법원.헌재)이라도 지방에 내려가 수도권 과밀 해소 정책에 기여해야 한다는 게 셋째 대책의 논리다. 둘째 대책을 통해 대법원.헌재의 구성원이 바뀌면 사법기관 스스로 정부 대책을 따를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수도 이전을 위헌으로 결정한 헌재에 지방 이전으로 책임지라는 모양새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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