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BOOK] 불도저로 싹 밀어버린 1950년대 미국 재개발, 그래서 행복해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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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제인 제이콥스 지음
유강은 옮김
그린비
592쪽, 3만5000원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인 19세기 도시는 그래도 낭만적이지 않았을까? 우선 인구밀도도 높지 않았을 것이다. 마차가 점령한 거리도 차량이 꼬리를 문 지금의 살풍경과는 달랐겠지만, 도시의 변천과정을 다룬 이 책은 그게 별로 근거 없음을 보여준다. 당시 영국 런던의 심장부인 스트랜드가. 레스토랑과 선술집이 수많은 극장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고, 어깨를 마주한 소규모 상점들 역시 손님 부르기에 여념 없다.

문제는 ‘그놈의 진흙’(말똥)이다. 런던 전체가 마구간 냄새로 진동했고 여름철이면 수북한 진흙더미 사이로 파리 떼까지 극성이었다. 소음도 장난 아니었다. 징 박은 말발굽 소리와, 마부 고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자동차의 등장은 축복이었다는 말일까? “자동차가 도시를 파괴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19세기 거리가 매력적이었다는 것 역시 동화 같은 이야기”(451쪽)다. 즉 고밀도의 도시란 항상 골치덩이였고, 인간의 지혜와 무한 노력을 요구해왔다.

책이 다루는 것은 1950년대 미국 도시다. 당시 미국 도시는 지금의 우리와 상황이 비슷했다. 도심 공동화 현상에 교통 혼잡이 극에 달했다. 대규모 슬럼가 형성도 그때다. 당시 시민들과 도시행정가들이 떠올렸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지저분한 곳을 불도저로 깔끔히 밀어버린다는 재개발이다. 이때 전원도시 같은 교외단지 조성이 시도됐고, 아파트를 진지하게 생각했던 첫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고층빌딩 숲을 실험했다.

현대도시가 자리 잡은 1950년대에 지은이는 프리랜서 여성 기자였다. 뉴욕 거리를 유심히 관찰하던 그의 남편이 건축가였는데, 그로부터 도시건축에 대해 배울만큼 배웠고 그 위에 자신의 통찰을 담은 이 책을 썼다. 유려한 톤의 이 책에서 그가 내세우는 명제는 ‘생명력 있는 도시’다. 도시의 생명은 활기·다양성 그리고 안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일한 용도로 분할돼 개발되는 비인간적인 지구 계획 대신 다양한 용도가 뒤섞이도록 배려해야 옳다.

아마추어가 쓴 섣부른 도시론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후 이 분야의 핵심 저술로 떠올랐다고 하는데, 서울 등 거대도시와 씨름하는 우리에게도 일정한 암시를 준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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