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5600명 노래 “술에 취했다 깬 것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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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간을 기념해 고은 시인이 쓴 붓글씨 ‘二十五年與萬人(이십오년여만인)’.

4001편의 시로 5600여 명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도 25년 동안. 구상까지 포함하면 30년이 걸렸다. 한 세대,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느낌이다. 고은(77) 시인의 연작시편 『만인보』(萬人譜·창비)가 드디어 전 30권으로 완간됐다. 한국 현대문학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만인보』는 ‘시로 쓴 한국사 인물대사전’이다. 머슴 대길이부터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인물을 두루 다뤘다.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한 시인의 애정을 담았다. 완간을 기념해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심포지엄·축하연이 열렸다. 기자간담회에서 시인은 천안함 참사에 대해 “죽음이 정치적인 시대는 행복한 시대가 아닌 것 같다”고 언급하며 서두를 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완간한 심경은.

“간밤에 ‘아련가련’이란 낱말을 지었다. ‘아련보다 덜 아련하다’는 뜻이다. 60년 전 10년 연상의 고향 시인 전옥배와 십리 길을 걸었다. 만경강 하구 언저리에서 그가 강 건너 불빛 하나를 가리키며 ‘망해산 강 건너 아련한 불빛’이라 노래했다. 지금은 흔해서 촌스러운 말이지만, ‘아련한’은 내 가슴에 파고 든 첫 시어였다. 나는 고향 무명 시인의 넋 뒤에서 아직 아련한 불빛에 미치지 못한, 아련보다 못한 시인이다.”

-1980년 김대중 내란사건에 연루돼 수감된 상황에서 『만인보』를 구상했다. 마지막 27~30권에서 다시 광주를 이야기했다.

“80년 철창도 없는 특별감방에 갇혀 있었다. 문익환이나 나나 끝이라고 생각했고, 생명에 집착하지 않았다. 아지랑이처럼 어렴풋이 광주 이야기가 들려왔다. 우린 살아있었고 그들은 죽었다. 살아 나가면 이걸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죽은 자에 대한 진혼은 의미가 없었다. 내 상상 속에서라도 그들의 중단된 삶을 이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만인보』를 집필하면서 나는 의식을 가능한 배제했다. 역사는 인간의 자연이기도 하다. 계절처럼 돌아오는 것이다. 광주도 계절의 이동에 의해 자연스럽게 써졌다.”

-더 많은 이름을 부를 계획은 없나.

“『만인보』의 본질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초상은 일회적일 수 없다. ‘만인’이란 1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많다는 뜻이다. 인도는 천겁 만겁 더 막막한 숫자로 우주를 말한다. 그에 비하면 ‘만’은 겸손한 숫자다. 이것이 하나의 서사 장르로서 정착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어갈 수도 있을 거다.”

-총 25년이 걸렸다.

“완간하고 보니 술에 취했다가 깬 것 같다. 25년만 살다 죽은 시인도 많은데, 나는 그런 목숨 몇 개라도 산 셈이다. 이제 길마를 벗었으니 텅빈 등짝만 남았다. 어깨에 날개가 생겨 날아갈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경희 기자


만인보 완간에 부쳐
천 개의 목소리 하나의 함성 되다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만인보』 완간 기념 기자회견에서 고은 시인은 “삶이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듯,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점점 시가 쓰여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완간 개정판 합본 12권이 층층이 쌓여있다. [연합뉴스]

고은을 지성사가 아니라 ‘야성사’로 읽자고 쓴 적이 있다. 문명·체제·교양의 폭력을 그는 시로 지워왔다. 루소가 말한 ‘자연’ 상태의 ‘고귀한 미개인’의 길을 추구하는 자의 고독. 그런 시 정신은 ‘번개가 번쩍이는 순간’에 출현한다. 어두운 땅 밑이 순간적으로 밝아지듯이, 그가 내리친 언어에는 넓고 거대한 고요의 흔적이 드러난다. 비약과 건너뛰기, 가로지르기로 모호해진 장면에서 신기하게 존재의 찰나성이 발견된다. 소재도 아무 때나 시·공간에 등장하고 퇴장한다. 4·19 얘기를 하다 신라 이야기가 나온다. 다큐멘타리가 아니라 모멘트의 힘이다.

『만인보』는 규모부터 전무후무하다. 시를 25년 동안 쉬지 않고 써서 탈고한 예가 어디 있는가? 세계문학사에서 최대 스케일을 가진 발자크의 『인간희극』은 70편의 소설에 2000여 명을 그려 인물사전이 나왔지만 『만인보』는 그 두 배이다. 하지만 체계를 따라가며 읽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만인’이라 부르는 세상 그 자체다.

물속 어디엔가 물고기의 세상이 있고, 하늘 어디엔가 기러기의 세상이 있으며, 대지 어디엔가 인간의 세상이 있다. 그 물속, 그 하늘 속 어디를 그들의 세상으로 읽는 것은 대지 세상의 간절함 때문이었다. 보라. ‘먹밤중 한밤중 새터 중뜸 개들이 시끌짝하게 짖어낸다/(…)/ 이런 개 짖는 소리 사이로/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밤 기러기 드높게 날며/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선제리 아낙네들’, 11권)

세상은 멀리서 보면 생명이 나고 죽는 것밖에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에서는 어떻게 태어나서 무엇을 먹다가 죽는가가 보이고,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이웃에서 여러 지역과 사회 각계, 땅의 역사와 산야에 잠긴 삶을 그는 한 개뿐이며 한 번뿐인 세상의 원본으로서, 천 개의 목소리가 만든 유일하고 같은 하나의 함성으로 포착한다.

죽음 앞에서 그리운 것이 옳고 논리적인 것뿐인가? 배은망덕도 ‘세상 안’이라는 쓸모를 얻는다. 그런 원한체계 안에서 그리움을 찾아낸 ‘선제리 아낙네들’이 백미라면, ‘죽은 개’ ‘나운리 가게’ ‘김병천’ ‘귀녀’ 같은 명작들은 이데올로기로 닿을 수 없는 명편의 노래다.

폭력이 창궐하는 인류사의 깊은 골짜기에서 낱낱의 수명은 길어야 70년이지만, 자아가 커지면 나르시즘적 몰입이 발생하여 분신·자살 등의 비극이 생긴다. 『만인보』는 그런 근대정신의 극단을 내쫓는 시요, 굿이었다.

김형수(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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