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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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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 7일 오후, 국내 트위터(twitter) 이용자들은 누군가 쓴 메시지를 리트윗(retweet) 기능을 이용해 퍼 나르기 시작했다. “오늘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후배를 만났는데 이제 아이폰이 쇠퇴의 길을 걸을 거라면서 좋아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이폰 쓰냐고 물었더니 안 써봤다더군요”라는 내용. 필자는 또 “아이폰을 이기는 솔루션이 국내에서 속히 나오길 바라지만 업체들은 기계 몇 대 파느냐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들 일반 네티즌 중 하나로 여겼던 이 ‘쓴소리’의 주인공은 8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 부회장은 “아이폰 사용자들끼리의 얘기인데 너무 공격적인 내용만 부각된 것 같다”고 다시 해명했고, 이 세계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하루 만에 4000여 명이 추종(follow)하는 인기 트위터러에 올랐다.

140자 이내의 짧은 글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의사를 교환하는 트위터 서비스는 지난 2006년 3월, 발명자인 잭 도시(Dorsey)가 첫 번째 메시지를 날리며 시작됐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1년 뒤 전체 글 수는 200만 개로 늘어났고, 2010년의 글 수는 160억 개로 예측된다. 3월 현재 전 세계 트위터 이용자 수는 약 7500만 명. 국내 이용자는 아직 정확한 집계가 없지만 20만 명 정도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의 트위터 ‘사건’은 의사소통 혁명의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달라이 라마에서 드라마 작가 김수현까지, 스티브 잡스에서 카라의 구하라까지 구름 위의 존재 같던 톱 셀레브리티들이 일반 네티즌과 1:1로 소통할 수 있다는 건 지금껏 지구상에 존재한 적 없던 현상이다. 신속성은 말할 것도 없다. 9일 한명숙 총리의 공판 현장에서도 성질 급한 몇몇 트위터러들은 어느 매체보다 빠른 ‘손가락 특종’을 기록했다.

물론 도구보다 중요한 건 이해하려는 의지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왜 케이크를 먹지 않는 거지?”라고 트위터에 쓰고 민중의 답글(reply)을 읽을 수 있었다면 프랑스 대혁명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1933년부터 11년간 라디오를 통한 노변담화(fireside chat)로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 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이라면 지금쯤 트위터가 없었던 걸 아쉬워하고 있지 않을까.

 송원섭 JES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