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허점 보인 '황장엽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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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의회가 독립기념일(7월 4일) 휴회에서 돌아오면서 황장엽(黃長燁)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방미(訪美)문제가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를 추진 중인 미 공화당 강경보수파 의원 3인 주변에선 한국 정부가 그의 출국을 막으면 성명을 발표하거나 결의안을 모색할 거란 얘기도 떠돈다.

黃씨 문제의 핵심은 그의 미 의회 증언이 단기.장기를 망라해 종합적으로 대한민국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일 것이다. 이는 남북 또는 북.미관계를 끌고 가는 방법론과 긴밀히 연결된다. 따라서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시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워싱턴에 있는 한국인들이 대체로 공감하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일의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의 오만과 한국의 허점이다.

黃씨는 분단 이래 가장 중요한 탈북 망명자이며 당연히 한국 정부의 특수보호를 받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한국 정부에는 '인간문화재' 다. 문화재를 빌릴 때도 보유국에 정중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도 제시 헬름스.헨리 하이드.크리스토퍼 콕스 등 공화당 3인은 黃씨 같은 특급 비중의 망명객을 미국으로 부르면서도 한국 정부에는 공식적인 협조 요청을 하지 않았다. 보좌관이란 사람들이 무슨 특사인양 한국에 가 黃씨에게 초청장을 직접 전달하려 했다.

그리고는 하원 공화당 정책위원장인 콕스 의원은 성명을 내고 "(黃씨)여행의 자유는 기본권" 운운했다. 주미 한국대사관의 고위 관계자는 "한국 의원들이 미국 정부 보호 아래 있는 쿠바 고위인사를 부르면서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초강대국의 오만을 절감한 또 하나의 사례" 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미 의원들의 오만은 어쩌면 한국 정부가 부른 것이라는 자성론도 있다. 정부가 망명객 관리에서 일관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전임 정권은 대북 우월성을 홍보하기 위해 黃씨의 대외활동을 상당히 보장했지만 현 정권 들어 그의 활동은 제한됐다. 黃씨가 항의하자 관계기관은 지난해 12월 "정 그러면 안가(安家)에서 나가라" 고 했다. "망명자에게 안가에서 나가라고 한 정부가 어떻게 신변안전을 들어 미국행을 반대할 수 있는가. 논리적으로 모순" 이라는 게 자성론자들의 주장이다.

김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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