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잘못된 '통일헌법' 논의 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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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원길(金元吉)보건복지부 장관이 이사장으로 있고 70여명의 여당 의원이 참여하는 새시대전략연구소가 지난 6일 '통일헌법' 관련 심포지엄을 열었다.

통일문제에 관한 다양한 논의는 서로의 입장을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합일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논의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심포지엄은 우선 주제설정과 논의의 시점 상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

심포지엄의 주제발표 제목은 '6.15 남북 공동선언의 규범화와 통일헌법론' 이었다. 남북 공동선언에 담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 는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이 정부의 단독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이젠 그 합의되지 않은 선언문을 기초로 해서 통일헌법을 만드는 쪽으로 몰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점에서 논의 순서가 뒤바뀌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6.15 공동선언문의 2항은 이렇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 이 조항은 숱한 해석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공동선언 당시부터 문제가 제기됐다.

우선 이 조항은 지금껏 공식화된 역대 정부의 통일 논의 방식과 전혀 다르다. 대체로 합의된 통일방식은 국가연합-연방제-통일국가가 그 순서다.

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재야 시절 통일방안도 비슷한 맥락의 통일방안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우리의 연합제안과 공통성을 지녔고 통일도 그 방향으로 하자는 6.15선언이 나오면서 통일방안의 혼선이 생겨난 것이다.

늦었지만 통일방안을 논의한다면 바로 이런 문제점에 대한 논의부터 하는 게 당연한 순서다.

그러나 이사장인 金장관도 기조연설에서 "6.15선언을 제도화하고 규범화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고 전제했고, 주제발표자인 박상철 교수도 '남북 정상회담 성과를 제도화' 하고 통일논의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도 통일헌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연방제안을 수용하는 공동선언 취지에 맞춰 통일헌법을 논의하자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낮은 연방제' 란 두개의 지역정부를 두고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두는 방안이라고 이미 북측은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나의 국가를 위한 두개의 지역정부인 것이다. 연합제안은 두개의 국가를 전제로 한다. 높건 낮건, 느슨하건 팽팽하건 별차이가 없는 연방제안을 우리가 언제 국민적 합의로 수용한 적이 있는가. 국민적 합의가 없는 이 통일방안을 이제 와서 아무런 공론화나 합의 과정 없이 선언 자체를 기반으로 해 통일헌법을 만들자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시점 상에도 문제가 있다. 기왕 논의할 바엔 선언이 있은 직후 왜 연합과 연방의 공통점이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공론화해야 했다.

그때는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임기 후반에 와서 통일헌법 운운한다면 어느 누가 정치적 저의를 의심하지 않겠는가. 기왕 논의할 바엔 '낮은 연방제'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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