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본 배짱외교에 맞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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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 정부가 역사교과서 기술내용 중 35곳의 왜곡부문을 성의있게 재수정하라는 우리 정부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단 두 곳만 수정키로 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한.일관계가 본격적으로 경색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교과서뿐 아니라 어업.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놓고 대한(對韓) 강공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내각에 맞서 정부도 맞대응한다는 방침이어서 한.일간 외교갈등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 "대응카드를 꺼낸다" =일본 정부의 검토결과를 비공식적으로 전달받은 우리 정부는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종합적 대책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정부는 왜곡 근.현대사에 대한 근본적 재수정이 이뤄질 때까지 각종 강경 대응카드를 사용해가며 지속적으로 재수정을 요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부가 7일 '긴급 대책반회의' 를 열고 구체적 대응방안을 확정키로 한 것도 이같은 방침에 따른 것이다. 정부 종합대책에는 대일(對日) 추가 문화개방 연기와 한.일 고위 당국자 교류중단 등 그동안 검토해왔던 모든 강경조치가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소식통은 "이미 지난달 열릴 예정인 한.일 공동 해상구조훈련을 중단한 데 이어 최근 한.일 군 고위 당국자 교류도 중단했다" 면서 "일본이 근본적인 재수정 입장을 밝힐 때까지 강경대응할 방침" 이라고 말했다.

◇ 양보만 권유하는 일본=데라다 데루스케 주한 일본대사가 오는 9일 한승수 장관을 예방해 검토결과를 공식적으로 전달한 직후 일본 연립여당인 자민.보수.공명당 간사장이 韓장관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들의 방문은 역사교과서 검토결과와 남쿠릴열도 수역에 대한 한국 어선의 조업 문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공식참배 문제를 협의키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후소샤 교과서의 사관과 일본 정부의 사관은 엄격한 차이가 있으나 이미 수정을 거쳐 검정까지 통과해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는 점을 설명하면서 "한국 어선이 남쿠릴열도에서 조업을 하지 말아줄 것" 을 요청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한국의 입장을 고려한 합리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한국의 이해와 양보만을 촉구할 계획인 것이다.

외교소식통은 "일본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외교현안에 대해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은 채 한국의 양보만을 촉구해 양국관계의 악화는 불가피하다" 고 전망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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