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러기 책동네] '비나리 달이네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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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작가 이름만 보고도 책을 살 정도라면 대단한 신뢰다.

동화를 고르는 부모들에게 작가 권정생이 그렇다. 동화 부문에서 한국의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몽실 언니』의 작가 권정생의 신작 『비나리 달이네 집』.

『하느님의 눈물』 『강아지똥』 등 그의 전작들이 그렇듯 소박한 이야기 속에 잔잔한 깨달음을 던져주는 미덕이 있다. 그렇다고 설교하려 들지도 않는다.

경남 깊은 산골 비나리에 두 식구가 산다. 신부였다가 환속한 농사꾼 아저씨와 사냥꾼의 덫에 치여 다리 하나를 잃은 강아지 '달' 이다.

달이는 개치곤 괴짜 개다. 아저씨 말에 따르면 스님같기도 하고 도사같기도 하고 심지어는 예수님같기도 하단다.

아저씨가 성당에서 나와 땀흘려 농사를 짓게 된 것도 달이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며, 하느님도 성당에서 나와 드넓은 벌판에서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며 아저씨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달이가 하늘을 보며 가끔 눈물짓는 것도 사람들이 불쌍해서라나.

덫을 놓아 약한 짐승들을 잡고 전쟁을 일으키고 거짓말하고 화내고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사람들.

세상을 바라보는 달이의 눈은 말 그대로 어린아이의 눈이며, 달이가 바라는 세상은 존 레넌이 노래했던 '이매진(Imagine)' 의 이상향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쯤 되면 개가 아니라 도인의 경지다. 달이의 다리 상처처럼 아저씨도 아픈 과거가 있다.

전쟁의 상흔이다. 키우는 개에게 '달'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밤마다 달을 보며 한숨짓는 그는 식구들이 헤어지고 집이 불탔던 전쟁의 기억으로 달이의 표현을 빌자면 '마음이 춥다' .

이들의 치유는 달이의 꿈 속에서 이뤄진다. 달이의 다리는 네개가 되고, 이들의 마을은 온통 꽃밭이 된다.

1937년 난징대학살 때 태어나 대동아전쟁.한국전쟁 등을 거쳐온 작가가 보내는 평화주의의 메시지가 마치 팬터지 소설처럼 솜씨있게 처리됐다.

『비나리 달이네 집』을 권하고 싶은 또 한가지 이유는 그림 때문이다. 달이의 모습은 귀엽다 못해 가슴이 찡하다. 사실주의 계열의 세밀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의 그림은 작품의 여운을 배가시킨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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