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앙일보는 이렇게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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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상 유례없는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가 발표됐고 검찰 고발도 일단 끝났다.

우리는 정권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세무조사 결과 독자와 국민에게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서 독자 여러분, 나아가 국민 앞에 우리 언론이 처한 이 엄혹한 사태를 어떻게 규정짓고 장차의 난국을 헤쳐가야 할지에 대해 우리 나름의 입장과 각오를 겸허히 밝혀 종국적으로 권력과 언론의 올바른 위상을 정립하고자 한다.

언론의 자유와 언론 경영의 투명성은 동시에 추구해야 할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한국 언론사는 독재권력의 압제 속에서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기업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처절한 싸움을 해야 하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독자에게 빠른 정보를 전달하고 바른 논평을 해야 한다는 언론의 소명 의식과 기업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판매.영업의 현실간에는 분명 빛과 그늘이 병존하는 불명예스러운 이력이 있음을 우리는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투명경영 위해 부단히 노력중

중앙일보는 이미 독자 여러분 앞에 깊은 자성과 함께 영업의 현대화와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할 여러 제도의 도입과 개혁을 발표해 실시하고 있다. 언론 기업으로서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과의 분리 독립을 끝냈고, 판매와 경쟁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신문.잡지 발행부수 공사기구(ABC)에 곧 가입하면서 낡은 판매 관행을 고치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경영과 편집의 분리를 위해 제작 구성원이 전담하는 편집위원회가 주요 편집 방향을 정하고 있으며, 사외이사제를 도입해 경영의 투명성을 한층 더 높이는 전기로 삼고 있다. 우리는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언론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자율적 개혁 노력을 부단히 해왔으며 앞으로도 이런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우리는 언론사라고 해서 공정한 세무조사를 거부해서는 안되고 개인과 기업의 납세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 왔다.

그러나 생존 차원의 낡은 관행에 무리하게 법을 적용해 납득할 수도, 감내할 수도 없는 거액을 추징함으로써 기업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려 든다면 이것이 어찌 언론 탄압과 무관한 조세 정의 구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예컨대 이렇다.

무가지(無價紙)란 언론 기업의 특성상 판매 전략지다. 국민의 약 20%가 해마다 이사를 다니는 상황에서 독자가 내용을 살펴보고 선택을 하라는 홍보지다. 이에 대해 보급소 접대비라는 명목으로 수백억원대의 추징금을 매긴다면 어떤 언론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이른바 신문고시라는 게 7월 1일부터 발효해 앞으로는 유가지의 20%를 넘는 무가지는 인정할 수 없게 했다. 백번 양보해 이 규정이 옳다면 앞으로 이 고시에 맞춰 무가지 과세를 적용하는 게 조세 법률주의의 기본 원칙일 것이다.

그런데 수년 전 무가지까지 소급해 전체 언론사에 6백88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이러고도 법과 원칙에 맞는 세무조사라 할 수 있는가.

특히 중앙일보는 이 정부 들어 두차례에 걸쳐 권력의 언론 개입이라는 치명적인 수난을 겪고 있다. 2년 전에는 중앙일보 발행인이 세무조사를 받고 구속되는 사태가 있었다.

정부는 언론 탄압과 무관한 탈세 혐의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검찰은 조사 결과 중앙일보 발행인의 주식 매입 과정에 따른 관행만을 문제삼아 기소했다. 곧이어 '문일현 언론문건' 이 흘러나오면서 당시 중앙사태는 정권 핵심부가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주도했다는 심증이 굳어졌다.

그때 우리는 중앙사태가 권력의 계획된 언론 탄압의 일환이고, 그것이 세무조사를 통한 표적 수사였음을 거듭 경고하고 경계했었다. 허나 동업 타사 언론들은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언론 탄압은 무슨 탄압, 기업 탈세와 언론 탄압은 별개라고 외면했다.

***2차에 걸쳐 중앙을 표적으로

돌이켜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조사 대상이 많아졌고 추징세액이 더 늘어났다는 차이는 있지만 비판 언론에 대한 재갈 물리기라는 시각에선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지난 1라운드 조사 때는 중앙일보만이 대상이었다가 이번 2라운드에선 여러 언론이 기업으로서 살아남기 어려울 만큼의 재정적 타격을 가하는 게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두차례에 걸쳐 정권의 가혹한 표적 대상이 된 지금 아직도 우리는 이것이 탄압인가, 개혁인가 하는 진부한 질문을 던져야만 하는가.

무릇 권력에 대한 언론의 비판과 감시의 기능은 언론 자체의 생명이고 속성이다. 이 비판 기능을 참지 못하는 권력이란 민주사회에서 존재할 수 없다. 민주사회의 여론을 대변하는 언론이란 다양성 자체가 생명이다. 보수적 언론도 있고 진보적 언론도 가능하다.

각기 제 목소리를 내면서 비판과 대안 제시로 나름대로 정부와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런 언론의 다양한 목소리와 비판을 참지 못하고 인신 구속으로 언론인을 위협하고 세금 추징으로 기업의 생존 자체를 허물려고 든다면 이런 정권이 정말 민주사회를 끌고갈 자질과 능력을 갖췄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작금의 언론분열은 전체의 불행

우리는 차제에 언론사 전체를 향한 공동연대를 천명코자 한다. 방송이 신문을, 이른바 '작은 신문' 이 정권과 같은 입장과 시각에서 일부 '큰 신문사' 를 매도 일변도로 몰아붙이는 작금의 사태는 전체 언론 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언론끼리의 편가르기나 이전투구(泥田鬪狗)식 비방전이 전례없이 거세지고 여기에 일부 시민단체가 가세하면서 국민은 과연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판단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래선 안된다. 비록 소수라도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언론이 있으면 언론 전체가 나서서 공동연대로 조사하고 밝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언론 현실은 정권이 개혁이라면 개혁이라고 앞장서고 조세 정의 구현이라면 그렇다고 맞장구 치는 슬픈 현실로 바뀌어 가고 있다. 소수가 당하면 결국 전체가 당할 수 있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경각심과 연대 없이 제각기 뿔뿔이 흩어질 때 언론은 결코 권력의 탄압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전체 언론사가 이제는 알 때가 되지 않았는가.

끝으로 우리는 최근 언론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든 흔들림없이 언론 본연의 책무를 견지할 것임을 거듭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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