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환율 떠받치면 수출 줄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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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수출을 늘리기 위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떠받치는 정책은 내수 침체를 불러와 결국 수출까지 위축시킨다고 경고하는 보고서를 한국은행이 7일 발표했다. 이는 경제성장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 증가세를 지속하기 위해선 고환율(원화의 평가절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재정경제부 입장을 비판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한은 금융경제연구원은 '비교역재 모형을 이용한 최근의 수출 호조 및 내수 부진에 관한 분석'에서 멕시코의 예를 들어 정부의 외환정책을 비판했다.

멕시코는 1994~95년 외환위기 직후 수출을 늘리기 위해 페소화의 환율을 떠받치는, 즉 페소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외환정책을 썼다. 이에 힘입어 95년 수출은 전년보다 30.2% 증가했지만 투자는 35%, 소비는 8.4% 줄었다. 멕시코는 환율 떠받치기 정책을 고수했고, 이에 따라 수출 호황과 내수 침체 현상은 2000년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결국 2001년 투자.소비는 물론 수출까지 가라앉기 시작했다. 내수 침체가 결국 수출의 발목까지 잡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이 우리나라에서도 재연되는 듯한 모습이라는 게 한은의 주장이다. 높은 환율이 수출 증가와 수출 제조업의 생산.고용 증가로 이어졌지만 서비스업 생산과 고용을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높은 환율은 또 물가 상승을 불러와 투자와 소비 위축의 한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 금융경제연구원 최영준 과장은 "멕시코의 경우 장기적인 내수 침체로 기업.가계의 파산이 급증하면서 금융위기가 재현됐고, 서비스업 투자 부진은 노동생산성의 향상을 막아 결국 수출경쟁력도 약화시켰다"며 "내수를 희생하면서 수출을 늘리려는 환율지지 정책은 내수 침체를 가속화해 결국 수출의 발목도 잡았다"고 설명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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