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달자의 '귀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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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시인 신달자(61.사진)씨가 다시 시로 돌아왔다. 수필집 '백치 애인'과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등을 잇따라 펴내며 1980년대 말 독서시장의 확실한 흥행카드로 떠올랐던 그로서는 반가운 '귀향'이다.

자초한 것이긴 하지만 그는 그런 처지가 달갑지 않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시인으로서 작품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단다. 신씨가 6년 만에 펴낸 열한 번째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민음사)는 그런 자책과 고뇌를 바탕으로 고통스럽게 시어를 깎아온 그간의 과정이 오롯이 들어 있는 결과물이다.

시집에는 6년 동안 쓴 130여편 중 '태작'들을 걸러낸 70여편의 시가 실렸다. 시집 첫머리 '시인의 말'에서 밝혔듯 대부분 말과 언어의 의미를 파고 든 작품들이다. 그런데 여러 시편에 거듭 등장하는 말과 언어는 균일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외할머니 두레박에 어리는 첫 햇살" 같던('말을 찾아서') 그 말들은 "젊은 날의 급물살에 떠내려"가버렸고, 이제는 "들릴 듯 들리지 않는" 아쉬운 것이 됐다.

신씨는 이미 세상 소음과 뒤섞여 버린 말을 찾는 한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중년의 욕망 등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거침없이 노래한다. 폐경(閉經) 여성을 그린 '생명의 집', 팔자 고치는 일을 두고 망설임을 드러낸 '개가론(改嫁論)' 등에서 그런 변화가 읽힌다.

지난주 기자를 만난 신씨는 "남들은 그 나이에 무슨 새 출발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제야 시가 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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