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기행] 부산 연제구 '물만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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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부산시 연제구 연산2동 물만골에 들어서면 시골에 온 느낌이 든다.

아카시아 ·소나무 ·밤나무 숲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옥수수 ·호박 ·고추 ·상추를 심어놓은 텃밭이 이어져 있다.

그러나 이곳은 부산시청에서 마을버스로 10분이면 갈수 있는 부산시내 마을이다.도심의 철거민들이 황령산 중턱에 자리를 잡으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주민 대부분이 가난하게 살아가지만 마음만은 모두 부자다.도심의 아파트 를 부러워하지 않는다.그래서 1천5백여명의 주민들은 도시 빈민촌에서 늘상 이뤄지는 아파트단지 위주의 재개발에 반대한다.

대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다.마을공동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환경친화적인 마을을 건설하려는 것이다.

1998년 11월 주민총회에서 물만골공동체(위원장 李熙燦)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생태마을 건설에 착수했다.

4백30가구 주민들은 99년 2월부터 매달 가구당 10만원씩 새마을금고에 적립하고 있다.마을 땅 11만8천평을 마을 공동명의로 구입하기 위해서다.이미 60.4%를 매입했고 내년 2월이면 매입이 끝난다.물만골 땅 주인은 외지에 살고 있다.

주민이 마을을 떠날 때는 개인지분을 물만골공동체에 반납하고 당초 매입했을 때 들어간 돈만 받아나가기로 했다.

물만골공동체는 2003년부터 생태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7만평은 거주지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산과 마을을 연결하는 완충지역으로 남겨둘 예정이다.

기존 집들은 모두 철거하고 마을 위쪽부터 5∼10채씩 단계별로 24평 규모의 집을 짓는다는 계획이다.집은 가구당 1천4백만원을 들여 흙·나무 등 환경친화적인 재료로 지을 예정이다.

대지 2백평에 집 한 채를 짓고 남은 땅에는 텃밭과 녹지를 조성한다.5년 정도면 생태마을 조성이 끝나고 그때까지 가구당 매달 10만원씩 불입하면 예산문제는 모두 해결된다.

이 마을에는 모두 4곳의 오수합병정화조를 만들어 가정에서 나오는 오수를 정화한 뒤 실개천으로 내려보낼 계획이다.

이 물은 실개천에서 지표수와 만나 자연정화 과정을 거친 뒤 연못형태의 저습지(2곳)에서 2차로 정화과정을 밟는다.

주민들은 마을안에 중 ·고교 과정의 대안학교를 세운다는 계획도 추진중이다.

이희찬 위원장은 "아파트단지 위주로 재개발을 하게 될 경우 기존 주민의 20%만 정착하고 나머지는 또다른 빈민촌을 찾아 흩어진다"며 "마을과 환경을 지키면서 이곳 주민들이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생태마을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맑은 물이 많이 흘러 물만골이라 불렸던 이곳은 63년부터 도심의 철거민들이 들어와 자연스럽게 마을로 형성됐다.

이희찬 위원장은 "희생과 봉사가 없으면 공동체마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인간이 귀하게 대접받는 생태마을로 만들어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부산=정용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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