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이 순매도 공세를 펼치지만 길게 보면 줄기차게 아시아 증시로 몰려들고 있다. 외국인들은 비교적 탄탄한 제조업을 보유한 한국과 일본.대만 시장에서 우량 주식을 골라 매입하면서 큰 손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경제가 불안한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에서는 미련없이 주식을 던지고 손을 털고 있다.
◇ 아시아 러시=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은 27일 일본 전체 증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비중이 금액기준으로 20%에 육박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간에 일본의 닛케이 평균지수는 5.85% 하락했지만 외국인은 꾸준히 우량주와 가치주를 사들이고 있다. 이들은 블루칩에 속하는 소니와 도요타자동차.신일본제철 등을 집중적으로 매수했다. 이에 따라 도요타자동차는 하락장에서도 올 들어 18.6%나 주가가 올랐고 신일본제철과 소니도 각각 3.7%와 3.5%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외국인들은 올 들어 대만증시의 가권(加權)지수가 0.97% 오른 가운데 52억2천만달러의 주식을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수치는 지난 한 해 동안 대만 시장에서 기록한 전체 순매수 규모(51억2천만달러)를 뛰어넘는 것이다.
최근 증가세가 주춤했지만 서울 증시에도 외국인 비중이 늘어났다.
UBS워버그 증권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올 들어 한국 시장에서 44억5천만달러 어치를 순매수했다. 지난 한 해 동안 1백17억달러 어치를 순매수한 것에는 못 미치지만 아시아 신흥 시장에서 한국의 순매수 규모가 가장 크다.
이에 힘입어 올 들어 서울 증시는 아시아 시장 중 가장 높은 22%의 상승률(장외시장 포함)을 기록하고 있다.
◇ 아시아로 몰리는 뮤추얼펀드=전세계 신흥시장에 투자하는 글로벌 뮤추얼펀드는 올 들어 아시아 주식을 편식하고 있다. 미국의 데이터리서치 기관인 GIP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펀드의 투자비중은 아시아가 42%로 중남미(30%)나 유럽(12%)에 비해 훨씬 높았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한국 31%▶대만 21%▶인도 18%▶중국 11% 순으로 투자 비중이 컸다.
현대증권 투자전략팀 장선희 연구원은 "아시아 시장이 상대적으로 유망하다는 판단에 따라 글로벌 펀드 투자도 이 지역으로 몰리고 있다" 며 "글로벌 펀드만 보면 한국 시장에 8주째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고 말했다.
◇ 빈익빈 부익부=외국인의 투자가 늘지만 국가별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대만.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가들과 일본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늘었지만 경제전망이 불투명한 태국과 필리핀 등에는 투자규모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외국인들은 태국 시장에서 지난해 8억2천만달러를 순매도한 데 이어 올 들어서도 52억달러의 매도 우위를 보였다. 필리핀 역시 올 들어 주가가 2% 가량 올랐지만 외국인의 투자규모는 1억달러로 미미한 수준이다.
외국인들은 또 아시아의 우량기업 주식만 골라 사들이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상위 기업의 주식은 가격을 불문하고 매집하지만 시장 점유율이 3위 이하의 기업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증권업협회 박병주 조사국제부장은 "외국인들은 돈이 되는 국가만 찾아다니면서 나라별로 시가총액이 큰 블루칩과 우량주를 집중매수하고 있다" 며 "서울 증시에서 현대차와 삼성전자.국민은행.삼성증권 등을 매수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아시아 투자가 증시에만 국한될 뿐 설비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대한투자신탁증권 이정완 국제부장은 "수익성을 중시하다 보니 외국인 투자가 주가가 하락한 우량기업의 지분 인수에만 집중되고 있다" 며 "외국인들의 직접 설비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고 지적했다.
정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