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김중수 “올 성장, 전망치 웃돌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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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오른쪽)가 5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의 뱅커스클럽에서 만났다. 비공개 모임에 앞서 윤 장관이 재정부 측 참석자를 소개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5일 아침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마주 앉았다. 김 총재가 취임한 지 나흘 만에 이뤄진 첫 만남이다. 장소는 한은이 예약한 서울 명동의 뱅커스 클럽.

오전 7시20분쯤 재정부와 한은 관계자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26분에 윤 장관이, 28분엔 김 총재가 도착했다. 늦게 온 김 총재가 “왜 이리 일찍 오셨나요, 빨리 올 걸 그랬네요”라고 인사하자 윤 장관은 “금방 왔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이날 조찬 메뉴는 입맛을 돋우고 소화에도 좋다는 야채죽. 죽은 껄끄럽던 정부와 한은의 관계를 개선하고 공조를 강화하자는 이날 모임의 취지와 어울리는 듯했다.

상대를 치켜세우는 덕담이 이어졌다. 윤 장관은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라며 김 총재의 취임을 축하했다. 또 다른 정부 측 참석자는 프랑스 파리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근무한 김 총재에게 “워낙 일을 많이 하셔서 파리 구경도 못하신 것 아니냐”고 인사를 건넸다. 김 총재도 “여기저기서 들어보니 (윤 장관은) 존경받는 분”이라고 화답했다.

비공개 모임이 1시간 넘게 진행됐다. 모임이 끝난 뒤 양쪽에서 예상 이상의 반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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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장관은 “경제상황과 거시전망에 대해 광범위하게 생산적 논의를 했다”며 “앞으로 재정부와 중앙은행이 공조를 잘해 경제가 잘 굴러가도록 완전히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완전히’라는 표현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김 총재는 “앞으로 국제시장이 급변할 것이기 때문에 두 기관이 어떻게 협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공감하는 자리였다”며 “많은 대화를 통해 좋은 정보를 나눴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리·환율 등 민감한 사안은 모두 에둘러 갔다. 한은 장병화 부총재보는 “거시경제 상황에 대한 논의는 있었으나 금리나 출구전략·환율과 관련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 총재는 취임 이후 분명한 색깔을 드러내지 않았다. 취임사나 그동안의 발언에도 정부와의 시각차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지난 1일 취임사에서 “대내외 경제환경의 변화에 유의하면서 최적의 (출구전략)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기 회복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며, 정부와 공조하겠다는 뜻이란 게 시장의 해석이다.

이날 한은은 올해 성장률이 예상치인 4.6%보다 높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측 시각에 한 발짝 다가선 셈이다. 정부는 5% 이상 성장을 장담하고 있다. 한은은 “1분기 성장률이 예상을 웃도는 것으로 추정되고, 이것이 2분기 이후에도 성장률이 조금씩 높아지는 쪽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0년 경제전망’에서 올 상반기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5.9%, 하반기에 3.4%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환율 문제에서도 윤 장관과 김 총재는 수출에 초점을 잡고 손발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지난 주말보다 2.9원 상승한 달러당 1123.10원으로 마감했다. 1월 17일(1123원) 이후 거의 석 달 만에 최고 수준이다. 원화가치가 지나치게 빠르게 오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돼 있고, ‘환율 주권론자’로 불리는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이 복귀하는 시점이어서 정부와 한은의 대응이 주목된다.

또 다른 민감 사안인 한은법 개정도 서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윤 장관과 김 총재는 지난해 두 기관과 금융감독원이 맺은 정보공유 및 공동검사 관련 양해각서(MOU)를 거론하고 이를 강화하기로 했다.

재정부 장관이나 한은 총재가 바뀌면 두 기관의 수장들은 상견례를 하곤 한다. 첫 만남인 만큼 두 수장은 입을 모아 ‘공조’를 강조하는 게 관례다. 나중에 현안이 벌어져 껄끄러운 사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김 신임 총재가 이끄는 한은은 이성태 전 총재 시절과는 달리 정부와 ‘공조 모드’를 오래 지속할 것이란 게 시장의 시각이다.

글=허귀식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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