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물, 아버지는 불 … 충돌하고 갈등하는 가족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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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숨(36·사진)씨는 서사의 재미나 감동보다 기법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소설가다. 기존 소설들과 얼마나 다른지, 소위 ‘차이의 게임’에서 김씨는 그 동안 성공적이었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씨가 세 번째 장편 『물』(자음과모음)을 냈다. 계간지 ‘자음과모음’에 연재했던 작품이다. 소설은 김씨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도 색다르다. 그만큼 새롭다. 역으로 ‘평범한’ 소설의 재미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그만큼 어려울 수도 있겠다.

중심 인물은 어머니. 헌데 어머니는 물의 속성을 속속들이 갖추고 있다. 보다 정확하게는 어머니가 가진 물의 속성, 그에 대한 관찰과 사유가 어머니라는 인물의 캐릭터보다 소설 속에서 강조된다. 그러니 소설의 주인공은 실은 어머니가 아닌 물이다. 물인 어머니는 실제 물이 그런 것처럼 얼음·물·수증기 세 가지 형태를 옮겨 다닌다. 여기서 세 가지 형태는 결코 은유가 아니다. 어머니는 물 상태에서 얼음 상태로 아무런 이유나 사전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이행한다.

물론 어머니에 대한 얘기가 소설의 전부는 아니다. 어머니만큼 기이한 나머지 가족 구성원이 경험하는 이상한 4년간의 이야기다. 화자인 나는 소금이다. 아버지는 불, 쌍둥이 여동생은 금, 막내 여동생은 공기이다. 각자 자신의 물질적 특성에 따라 충돌하고 갈등한다. 때문에 소설은 근본적으로 가족 서사다.

4일 김씨를 전화 인터뷰해 감상 팁(tip)을 들었다. 김씨는 “물과 같은 사람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바슐라르는 물질이 인간의 상상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을 연상시키는 환상적 장치에 대해서는 “일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 보니 자주 쓰게 된다”고 답했다. 김씨는 또 소설이란 밤길 가로등 아래서 만나는 익숙하지만 낯선 이웃의 얼굴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교훈이나 재미보다 일종의 충격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를 위해 “늘 감각을 예민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은 독법을 추천한다. 김씨의 문장을 ‘화두’ 삼아 음미하며 상상력을 가동해보시라. 스스로의 가족이 돌아다 보일 수 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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