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레터] 이래도 외면하시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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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도 놀랐습니다. 이렇게까지 우리 출판계가 불황인지. 최근 어느 실용서적 출판사에서 신간을 내면서 그 책에 ‘이 책을 구입하신 독자들께 진짜 종자땅을 드립니다’라는 광고문구까지 붙였더군요. 보기에 따라 뜻이 있는 출판인에게는 엄청난 자괴감을 안겨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요즘 출판계에는 이런 이야기도 돕니다. 알찬 인문서적을 출판하면 1000부가량 팔리는데 그것도 그 책이 너무나 탐이 나 언젠가 그 비슷한 책을 한번 출판해보겠다는 욕심으로 견본삼아 출판인들이 사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양서를 조금만 더 구입해준다면 출판계에 숨통이 튈텐데 하는 탄식이 나오지요.

잠깐 영국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지요. 영국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가는 인구가 줄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 뒤 영국 정부가 보인 움직임이 부럽습니다. 아예 도서관이 구입해야 할 신간 도서의 양과 그렇게 구입한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연한까지 못박았습니다.
영국 정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도록 만든 것은 영국 가디언지의 기사였습니다. 지난해 영국의 각급 도서관을 찾은 이용객 수는 그 전해에 비해 1.4% 늘었지요. 하지만 가디언지는 지난달에 이 통계를 분석해 조금 색다른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단순 수치로 보면 도서관 이용객은 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컴퓨터를 이용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은 주민이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가디언지의 분석에 따르면 2003년도 영국의 도서 대출량은 오히려 그 전 해에 비해 오히려 5% 줄어들었습니다. 이 분석에 이견이 없었고, 정부가 먼저 처방을 내놓았습니다.

앞으로 영국의 도서관들은 관할 내 인구 1000명당 매년 216권의 신간을 구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번 구입한 책은 6.7년 이상 소장하지 못합니다. 인구가 5000만명가량인 우리 나라에 그 지침을 그대로 적용하면 도서관들이 1년에 구입해야 하는 총 도서량은 1000만권 이상입니다. 문화강국의 힘은 정부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합니다.

정명진 기자 Book Review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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