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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다나카와 박근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나는 보시다시피 무학(無學)이다. 다행히 여러분은 천하의 수재들이다. 소신껏 일해주기 바란다. 책임은 모두 내가 지겠다. "

1962년 불과 44세의 나이에 막강한 대장상 자리에 앉은 초등학교 졸업 학력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는 일본 최고의 엘리트인 대장성 간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말은 겸손했지만 다나카는 '컴퓨터 달린 불도저' 라는 별명답게 곧 관료사회를 휘어잡았고, 10년 후 총리직에 올랐다.

"인간은 세 종류밖에 없다. 가족, 피고용인(使用人), 그리고 적(敵)이다. 피고용인은 나를 충실히 따르기 바란다. "

지난 4월 일본 외상에 취임한 다나카 전총리의 딸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의원이 외무성 간부들을 모아놓고 했다는 말이다. 부친과는 정반대의 자세다. 우리나라에서도 장관직을 경험한 일부 정치인은 "껄끄러운 것은 감추고, 일부러 스케줄을 빡빡하게 만들어 주리를 돌리고…" 라며 노회한 관료들의 '정치장관 다루기' 에 혀를 내두른다.

일본 외무성도 마찬가지여서, "이번 장관은 (써준 원고를 무조건 외는)암기력이 떨어진단 말이야" 라며 킥킥 웃는 분위기였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자신들을 머슴 취급하는 다나카를 만나 혼쭐이 나고 있다.

일본국민은 그런 다나카 외상에게 80%가 넘는 지지를 보낸다. 국회에서 다나카를 비판한 야당의원들은 '다나카 팬' 들의 엄청난 항의전화에 곤욕을 치렀다.

다나카 외상의 소신과 거침없는 언행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호사가들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딸 박근혜 의원(한나라당)과 다나카 외상을 비교하기도 한다.

둘 다 전직 국가원수의 딸로 부친의 후광을 업은 정치인이다. 朴의원이 모친 타계후 몇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것처럼 다나카 외상도 부친의 총리시절인 1972~73년에 건강이 좋지않은 모친을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을 맡았다. 朴의원은 "얼굴은 어머니, 성격은 아버지를 닮았다" 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다나카 외상이 정치인으로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반면 朴의원은 제대로 검증받을 기회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朴의원이 좋아한다는 '배는 항구에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는 격언에 빗대자면 '항구를 갓 벗어난' 정도라고나 할까. 부친과 다른 방식을 택해 관료사회와 일전(一戰)을 벌이고 있는 다나카 외상이 참고가 될 것 같다.

노재현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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