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학부모 부담 주는 불법 찬조금 관행 사라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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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학부모는 괴롭다. 빠듯한 살림에 아이들 학교 수업료와 학원비를 대기도 벅차다. 그런데 매년 적잖은 학교에선 갖가지 명목의 찬조금과 학교발전기금까지 걷고 있어 허리가 휘다 못해 부러질 지경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돈을 걷는 건 불법이다. 하지만 교육현장에선 ‘관행’이란 명분하에 불법이 판을 친다. 아이들 간식비와 교사들 야간자율학습 지도비 등으로 쓴다며 학부모 대표가 찬조금 액수를 통보하면 다들 알아서 내지 않을 수 없다.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학교발전기금도 부담을 주기는 매한가지다. ‘자발적 기탁’은 말뿐이고 실제론 강제 할당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이 2일 공개한 대원외고의 불법 찬조금 특별감사 결과는 이같이 혼탁한 교육현실을 생생히 보여준다. 학년마다 일반 학부모 50만~60만원, 학부모 대표는 100만원씩 내서 최근 3년간 21억2850만원을 모았다고 한다. 이 중 상당액인 16억여 원은 학생 간식비와 학부모 모임 경비로 지출됐다. 그러나 나머지는 스승의 날 및 명절 선물비, 회식비 등으로 교사에게 건네지거나 학교발전기금에 기탁됐다. 학교 측은 기탁분 중 일부만 기금 회계에 편입하고 대부분을 임의로 썼다. 시교육청이 재단 측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대원외고 측은 “다른 학교에서도 이뤄지는 관행”이라며 억울해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물론 불법 찬조금 모금과 학교발전기금의 파행적 운영이 이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잘못이 없다고 발뺌할 순 없다. 다른 학교들에 비해 찬조금 규모가 워낙 커서 “뒷돈이 많이 들어 가난한 집 애들은 다니기 힘들다”는 소문까지 자자했던 형편이니 말이다.

전국의 시·도 교육청은 이번 일을 계기로 불법 찬조금 관행을 뿌리 뽑을 수 있도록 대대적인 조사와 단속에 나서야 할 것이다. 또한 사실상 불법 찬조금처럼 운영되는 학교발전기금의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결코 특정 학교에 대한 1회성 감사로 그치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