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당에서 나오는 4대입법 연기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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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4대 법안' 처리 연기론이 나오고 있다. 최근 공식 출범한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의 회장을 맡은 유재건 의원에 의해서다. 여권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해 내부에서 건강한 비판과 의견이 제기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더구나 한국적 정치풍토에서 당직과 공천 등에서의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여당 의원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에 맞서기 어렵기에 그 용기를 칭찬할 만하다.

유 의원은 4대 입법의 정기국회 회기 중 처리 방침에 대해 "연내에 처리할 법도 없고, (강행 처리가) 국민에게 좋은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면서 "한두달 늦춰져도 국민과 함께해야지 일방적인 것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또 "개혁은 국민과 보조를 맞춰가며 완만하게 해야 한다" "국가보안법 등의 여당 단독 통과는 절대로 안 된다" "이해찬 총리가 사과하고 하루 속히 국회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등의 발언도 했다. 대체로 일반 국민의 뜻에 부합하는 발언들이다. 이런 합리적 의견이 국민 여론을 외면한 채 '개혁'이란 이름 아래 독선으로 치닫는 듯하던 여당에 균형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사실 최근 들어 여권 내부에서 잇따라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념적 문제에 대해 한 발짝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주문도 있었고 "조급히 개혁을 추진하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야당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고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국민 여론의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면 기다리면서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충고했다. 방향이 옳다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부작용만 커질 뿐이다.

국가보안법으로 억울하게 탄압받는 인사도 없고, 3대가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파렴치한 친일세력의 후손도 없다. 그런데도 4대 입법에 목을 맨다면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는다. 민주주의는 목적 못지않게 절차도 중요하다.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설득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