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공순이’라 불렸던 엄마 세대 얘기 들어볼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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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이옥수 지음
비룡소
292쪽, 9500원

제목부터 찡하다. 열일곱 살. 더이상 달콤한 꿈을 꿀 나이는 아니다. 그렇다고 더러운 세상 너 잘났다 욕만 하기에 열일곱의 가능성은 너무 크다. 찬란한 희망이 너무 무거운 나이다. 정말 ‘어쩌자고’ 열일곱이란 말이냐. 하지만 그런 혼란과 고통 속에서도 열일곱은 자란다, 자라야 한다. 악착같이 꿋꿋하게 일어나야 할 의무가 열일곱에게는 있다.

책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성장소설이다. 열일곱 동갑내기 친구 순지·은영·정애가 주인공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못갔다. 서울로 가면 삶의 돌파구가 보일 것 같았다. 돈도 벌고 공부도 하겠다, 꿈을 펼치려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낮에는 공장에, 밤에는 학교에 다녔다. “대학생이 눈이 삐었나 공순이랑 사귀게?”란 말에 가슴이 덜컹했지만, 출세해서 고향집 낡은 슬레이트 지붕에 기와를 올릴 생각에 맘이 설렜다. 서울살이는 서럽고 아팠다. 고향 생각이 그 설움을 달랬다. 셋은 설에 고향 갈 때 읍내에서 폼나게 택시를 타기로 마음을 모았다. 읍내에서 집까지 이십오 리. “셋이서 나눠 내면 얼마 안 들 거야.” 마음은 금세 붕붕 들떴다.

작가는 이야기의 모티브를 1988년 3월 발생한 안양 그린힐 섬유 봉제 공장 화재 사건에서 잡았다. 당시 공장 기숙사에서 잠자던 어린 소녀 스물두 명이 숨졌다. 기숙사 출입구는 철제 셔터로 닫혀 있었고, 지상으로 난 화장실 창문마저도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 소녀들은 화장실 쇠창살 밑에 켜켜이 쌓인 채로 연기에 질식해서 죽어갔다. 그들이 살아있다면, 이제 그들의 아이들이 딱 이 책의 독자가 됐을 터다. 꼭 한 세대 전 이야기다.

세 친구 중 순지만 살았다. 하지만 말을 잃었다. 친구를 잃은 슬픔과 나 혼자만 살았다는 죄책감이 순지를 짓눌렀다. 하지만 순지는 열일곱 살. 마냥 허우적거리며 살 수 없는 나이다.

“나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 너희들 말처럼 하늘을 쳐다봐도 짠한 아픔이 없는 그런 인생을……. 돈도 벌고, 공부도 하고, 출세도 해서……. 너희들이 원했던 것처럼 살아가고 싶어. 내가, 내가 이제 그렇게 살아보려고…….”(278쪽)

인생은 이렇게 ‘살아내야’ 하는 것, 열일곱이 아니어도 새겨야할 진리다. 순지가 이렇게 마음을 추스르기까지의 과정이 눈물겹게 펼쳐진다.

‘꿋꿋하게 살아가기’란 책의 주제는 어찌보면 평범하다. 하지만 접근방식이 신선했다. 최근 대부분의 성장소설들이 요즘 아이들의 문제, 즉 집단 따돌림이나 학업 부담, 가정불화 등을 다루고 있다. 또래들의 고민인 만큼 감정이입은 쉽다. 하지만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엔 한계가 있다. 한발 떨어져 삶의 교훈을 찾기에, 한 세대 전 배경도 퍽 쓸모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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