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BOOK] ‘창업의 거장’ 장보고에게 배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장보고 해양제국의 비밀
중앙일보 특별취재팀 지음
중앙일보시사미디어
255쪽, 1만2000원

1200년 전 신라 말 장보고의 선단은 청해진을 근거로 바다를 호령했다. 지난해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중국을 비롯해 일본·중동·아프리카를 뒤져가며 이 글로벌 무역상의 숨결을 되살린 것은 그래서 반가운 일이다.

책에서 장보고를 ‘창업의 거장’이라고 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시대를 읽는 혜안,그리고 이를 떠받쳐줄 시스템과 콘텐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가 중심이 된 조공무역이 지고 민간무역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예견했다. 시대 변화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거래방식도 선진적이었다. 장보고는 물물거래가 중심이던 시절 신용을 바탕으로 물품 대금을 먼저받고 나중에 상품을 건네는 방식의 거래도 했다.

단순히 중계무역만 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최고의 전략상품은 도자기. 장보고는 중국 웨저우(越州)에서 생산되는 도자기 기술을 받아들여 전남 강진에서 직접 도자기를 만들었다. 지금으로 보면 자동차나 반도체 기술을 들여와 세계적 제품을 만든 셈이다. 무엇보다 그는 바닷길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무역 루트임을 알고 간파하고 청해진을 허브항으로 키웠다.

예나 지금이나 경영인에게 어려운 숙제는 직원들의 마음을 사는 일이다. 이런 면에서도 장보고는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다. 그는 배가 머무는 곳마다 당시 정신적 구심 역할을 했던 사찰을 세웠다. 이를 통해 조직원들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현장 기자 출신답게 저자들은 새로운 팩트를 발굴하기도 했다. 일본 상인들이 매달 5일에 외상값을 주고 받는 이른바 ‘고토바라이(五十拂い)’가 장보고를 기리는 관행에서 비롯됐음을 밝혀냈다. 이런 보기 드문 자료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만날 수 있으니 책 읽기는 간접적으로나마 ‘장보고 루트’를 여행하는 게 된다.

이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