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난민 3만명 파키스탄서 추방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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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 난민의 날이다.

이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은 아프가니스탄 난민에 대한 자금지원 등 난민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준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에게 공로상을 수여한다. 그런데 바로 이날을 계기로 파키스탄 정부는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래 20년 넘게 아프간 난민의 보금자리로 자리잡은 페샤와르 지역의 나시르바그 난민촌에 대한 폐쇄작업을 강행할 예정이어서 국제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16일 파키스탄 정부가 최근 이달 말까지 나시르바그 난민촌을 대부분 허물고 이곳에 정착한 난민 3만여명도 추방하겠다고 위협했고 보도했다. 나시르바그는 다른 천막 난민촌과 달리 상점과 학교.이슬람 사원까지 갖추고 있는 아프간 난민의 실질적인 정착촌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정착민에게 난민촌 근처의 땅을 빌려 새 집을 지으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하루에 겨우 70루피(1천4백원)를 벌기도 어려운 아프간 난민에게 난민촌 폐쇄는 곧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 탈레반 정권이 점령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라는 협박이나 마찬가지다.

◇ 아프간 난민실태=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어진 내전으로 이미 전체인구의 10%인 2백50만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과 유럽으로 흘러들었다.

접경 파키스탄에는 1백50만명이 넘는 난민이 몰려들어 난민촌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한파와 가뭄이 교차하면서 또 다시 많은 난민이 파키스탄으로 모여들고 있다.

◇ 달라진 국제정세=유엔의 협조 아래 곳곳에 난민촌을 지었던 파키스탄은 이제 난민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아프가니스탄 집권 탈레반 정권이 테러 배후로 지목돼 유엔의 난민촌 식량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자국 역시 핵실험으로 인한 경제제재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파키스탄은 난민유입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말 국경을 폐쇄하고 난민을 선별해 받고 있다. 최근에는 불심검문을 강화해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은 난민을 곧바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이 조치로 지난달에만 4천여명이 추방됐다.

이에 호응하듯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탈레반 대표부는 "파키스탄의 짐을 덜어주겠다" 며 유엔캠프를 아프가니스탄 국경 안에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 국제사회의 반응=유엔이 정한 국제난민의 날(20일)과 맞물려 국제사회는 파키스탄의 난민촌 폐쇄라는 강경조치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또 유엔 관계자들은 탈레반 정권의 제안에도 부정적이다. 외국으로 피신할 권리가 있는 아프간인들에게 그대로 머무르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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