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태가 국가수호의 엄중함을 일깨워줬지만, 일부 음모론이 제기되는 등 다소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상위정치로서의 군사·안보에 대한 인식 부족 탓이다. 한국전쟁 60돌, 아직 휴전 중인 한반도의 취약한 정치·군사구조를 확인하는 ‘큰 사회적 합의’에는 더욱 멀다. 그런 징후는 사태를 장악해야 할 정부·군의 대응에서도 엿보인다. 북한의 특이동향이 없다고 유난스레 강조하더니 기뢰·어뢰 폭발 가능성을 밝힌 게 바로 며칠 뒤였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려는 태도이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두 달 전 이 칼럼에서 밝힌 대로 정부·군까지 어느덧 전쟁 포비아(공포증)의 덫에 걸린 건 아닐까?
지역이 지역인지라 침몰 원인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북한도 포함시켜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햇볕증후군에 노출된 탓인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 게 왠지 두려웠다. 공동체 삶을 위협하는 가상적을 정면에서 응시할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이다. 정부·군의 아쉬운 초기대응에는 전쟁 포비아 심리 같은 게 은연중 똬리 틀고 있었다는 게 나만의 판단이다. 누굴 탓하려는 게 아니다. 한국사회 전체가 그렇다. 언론인 김진현의 지적대로 더 큰 인간적 가치, 진정한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전쟁도 할 수 있다. 그게 상식인데, 전쟁 공포감부터 키우는 건 병든 사회의 징후다.
유감스러운 것은 다수 정치인들이 하위정치, 그것에도 한참 못 미치는 뒷골목 정치를 정치로 착각한다. 미디어도 주로 그런 것을 골라 다룬다. 현실정치와 정치저널리즘의 통념이 모두 잘못된 것이다. 그 점에서 한 정치학자의 말은 전쟁에 대한 쿨하고 엄정한 관찰로 흥미롭다. 연세대 박명림 교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전쟁은 엄청난 비극이지요. 하지만 그걸 치러내면서 한국사회는 ‘단단한 사회’로 변신했습니다. 근대국가의 동원 체제도 갖췄고, 냉정하게 말해 경제발전도 그래서 성공했던 겁니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