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새로운 4년] 역대 대선 후보들의 승복 연설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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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운동 기간에는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대지만 일단 승부가 갈리고 나면 승복 연설(concession speech)을 발표해 공식적으로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미국 정치의 오랜 전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J)은 3일 "지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전 세계를 향해 '나 졌소'라고 인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힘들다"며 역대 미국의 패배 인정 연설과 일화를 소개했다.

1952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패한 애들레이 스티븐슨은 링컨 대통령의 연설을 빌려 쓰라린 속내를 내비쳤다. "울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지만 그렇다고 웃기에는 너무 속상하다." 76년 카터 대통령에게 진 뒤 포드는 목이 너무 심하게 쉬어 말을 할 수 없자 아내 베티에게 위임했다.

베티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면서 남편이 카터에게 전화와 전보를 통해 축하의 뜻을 표했다고 가까스로 말했다. 미 역사상 가장 짧은 승복 연설이었다.

4년 뒤 레이건과 맞붙은 카터는 선거 당일 밤 9시에 패배를 공식 인정했다. 캘리포니아주 투표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이렇게 빨리 인정한 후보는 없었다. 그는 선거 하루 전부터 자신이 질 것을 짐작했다고 한다. 96년 공화당 밥 돌 후보 진영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밀리자 투표 2주 전부터 승복 연설 초안을 써놓기도 했다.

때론 연설 준비가 아무 소용없는 '비상사태'도 벌어진다. 2000년 대선 개표 전에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여러 종류의 연설문을 참모진에게 준비하도록 했다. 그중에는 선거인단 수에서는 승리하고 전체 득표수에서 패배할 경우를 가정한 것도 있었다 (결과는 정반대). 그러나 플로리다주 개표 지연으로 인해 미리 써놓은 연설문을 하나도 사용하지 못했다.

대신 5주에 걸친 법정 공방이 끝난 뒤 손수 작성한 연설문을 발표했다. 미 정치학도들 사이에서 가장 뛰어난 승복 연설의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고어가 만약 이 연설만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선거운동을 했다면 이겼을 것"이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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