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리더들 희망은 불황보다 강하다] 8.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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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걱정도 팔자'라고 한다. 세상에 근심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마쓰시타(松下)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만한 사람이 있을까. 그는 "사장은 종업원들의 걱정을 모두 짊어지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사장이 걱정 없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회사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36)사장의 걱정 많은 습관은 알아줄 만하다. 어려서부터 몸에 밴 걱정 하나로 세계 정상급 인터넷 기업을 꾸려가며 늘 새로운 걱정에 몰입하고 있다.

#'인터넷은 인간의 두뇌'

이재웅은 어렸을 때부터 걱정을 안고 살았다. 집에 불이 나면 어떡하나, 하늘이 무너지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극장에 가면 비상구부터 찾았습니다. 만의 하나 불이 날까 두려워서였죠. 왜 그리 걱정이 태산 같았는지, 그게 걱정일 정도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 연세대 전산학과와 대학원을 다닐 때 그의 걱정은 사회에 만연한 극단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거의 날마다 시위가 벌어졌잖아요. 3당 합당 뒤 최루탄이 난무했고요. 우리 사회는 극심한 대립구조였죠. '모 아니면 도'식의 사회가 왜 그리도 싫었던지…."

마침 프랑스 유학의 기회가 주어졌다. 대학원을 졸업하던 93년 그는 다양성의 나라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걱정 많은 성격대로 그가 선택한 과목은 파리 6대학 인지과학이었다. 인지과학은 인간 두뇌의 원리를 밝히는 학문. 근심과 걱정이 많은 그에게 딱 들어맞는 전공인 셈이었다.

고국에서 배운 컴퓨터와 당시 막 나오기 시작한 월드와이드웹(www), 파리에서 익힌 인지과학, 프랑스에서 경험한 다양성의 문화. 이재웅은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이거다. 인터넷은 인간의 두뇌와 비슷하다. 무수한 세포가 활동하는 대단한 인간의 두뇌는 바로 인터넷 아닌가." 그러고는 95년 컴퓨터와 인지과학을 접목한 인터넷 회사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하게 된다.

#'다양성을 즐겨라'

프랑스의 다양한 문화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그의 사고(혹은 걱정)도 넓혀주었다. "프랑스는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면서도 한쪽으로만 몰리지 않는 다양성의 사회입니다. 그 다양성에서 나오는 창의성이 강점이라고 할 수 있죠. 이른바 톨레랑스(관용)가 접착제 역할을 하고요."

그는 "유학시절이 가장 소중했던 시기"라고 말했다. 프랑스 유학을 통해 특유의 걱정 많은 성격이 다양한 사고를 갖춘 성격으로 탈바꿈했다고 덧붙였다. 다음이란 회사 이름도 '다음(多音.다양한 소리의 조화)'에서 착안했을 정도다. 이 같은 다양성의 강조는 '다음카페'에서 더욱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카페가 많지 않습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카페에 모이고요. 신문을 읽는 사람, 체스 두는 사람,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 복합적인 문화공간이지요. 프랑스에서 익힌 다양성이 카페 수 500만개 돌파를 앞둔, '다음카페'를 만들어낸 원동력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변화의 속도를 있는 그대로 만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변화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릅니다. 그 변화를 즐겨야 합니다.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변화를 즐기면 사회를 즐겁게 변화시킬 수 있어요. 물론 위험이 따르죠. 변화 자체가 위험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위험을 즐기지 못한다면 심한 스트레스가 돼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그는 직원들을 뽑을 때도 성적증명서나 토익점수는 제출도 못하게 한다.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다양성의 유연함을 중시한다. 그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주문한다. "당장의 연봉과 직업 안정성보다 길게 보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라. 공부 잘하고 토익 잘 보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을 해라. 이것이 힘이다."

정선구 기자

◆ 이재웅은=1968년 서울생. 모든 직원이 지위에 상관없이 서로 "아무개님"이라고 부르는 회사문화 때문에 그냥 "이재웅님"으로 불린다. 회사에는 그의 자리도 따로 없다. 다른 직원들 틈에 끼여 업무를 본다. 인터넷 공간을 휘젓는 그에게 사장실이란 유형의 공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2000년 세계경제포럼 선정 '미래 글로벌리더 100인'에 포함됐다. 다음은 현재 3800만명의 회원 수를 자랑한다. 한 달에 한번 이상 사이트에 들어오는 회원 수만 해도 2200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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