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룰 통합 더 미룰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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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바둑이 세계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룰이 하나여야 한다. 하나의 룰로 통합되지 않고는 올림픽이든 이에 준하는 국제대회든 스포츠로서의 국제대회로 등록하는 일은 요원해진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중국은 각자의 역사적 배경과 전통에 따라 서로 다른 룰을 사용하고 있고 대만의 응씨룰까지 가세해 크게 세가지 룰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행 국제대회는 주최국이 어디냐에 따라 계가 방식과 덤의 크기, 특수형태에 대한 판단방식 등에서 서로 다른 룰을 적용하고 있다.

지난 9월 중국 구이양(貴楊)시에서 한.중.일을 비롯한 10여개국의 대표가 룰 통합 문제로 사상 처음 회동한 것은 바둑계의 각성이란 측면에서 커다란 진전으로 평가된다. 물론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가지 바둑룰의 근본적인 차이는 계가할 때 "무엇을 셀(카운트할) 것인가"이다. 현대바둑을 일으킨 일본은 '집을 세는 방식'을, 종주국을 자처하는 중국은 '돌을 세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이 두 나라는 서로 한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일본은 서양과 남미 등의 바둑 보급에 절대적인 공헌을 해왔다. 중국과 한국.대만이 바둑의 신흥강국이 되기 전까지 동아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두어진 바둑은 모두 일본식이었다. 적어도 룰과 보급에 관한한 일본은 충분히 발언권이 있으며 뒤늦게 자신들이 일군 작물을 다른 나라가 수확하려는 시도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중국 역시 바둑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수천년 바둑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로서 커가는 국력을 바탕으로 중국룰이야말로 통합룰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양보하지 않는다면 룰 통합은 불가능하고 올림픽은 고사하고 바둑이 당면한 세계화조차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룰 통합을 위한 솔로몬의 지혜는 없는 것일까. 우선은 회의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가장 논리적인 바둑 룰이 이상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떤 룰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지와 편리함도 고려돼야 한다. 그 무엇보다도 한국.중국.일본.대만의 4개국이 '내것'에 대한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세계 바둑계가 룰 통합조차 이루지 못한다면 '지상에서 가장 지적인 게임'이란 바둑의 슬로건은 우습게 될 것이다.

남치형 교수 <명지대 바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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