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한 장기 계획] 하천· 저수지 준설 지금이 적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바닥이 드러난 강과 저수지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는 사람은 농민만이 아니다. 수자원 관련 전문가와 토목.건설업체 관계자도 안타까워한다.

"지금이 하천과 저수지 바닥을 파낼 적기입니다. 지금 준설하면 물이 차 있을 때보다 공사비가 80% 덜 들고, 장마철 홍수에 대비할 수도 있습니다. 바닥에 쌓인 진흙.모래를 파내면 담수능력이 커지고 장차 가뭄 피해도 줄일 수 있지요. " (유철호 대우건설 토목본부장)

농림부 건설기술과에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로부터 이같은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 정부도 긴급 편성한 가뭄대책 예비비 중 1백억원을 저수지 준설작업에 투입했지만 이것으론 부족하다. 수자원관리 차원에서 보다 본격적이고 장기적인 종합 준설계획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 실태〓농업용수로 공급되는 저수지는 1만7천9백56개. 그런데 1994년부터 지금까지 준설이 행해진 곳은 10%도 안되는 1천5백35개에 불과하다. 예산이 부족해 대형 저수지(용수공급면적 10㏊ 이상)를 중심으로 사업이 시행될 정도다.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통상 토사 유입으로 줄어드는 저수지의 저수량은 연간 0.2~1%로 본다" 면서 "하지만 산간지역 소형 저수지는 홍수 때 토사 유입이 많은데도 그동안 준설을 하지 않아 저수량이 크게 줄었다" 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이번 가뭄에 저수지의 물 표면 높낮이만 보고 한참 견딜 것으로 보았는데 며칠새 바닥을 보인 경우가 많았다" 고 덧붙였다.

수자원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에서 농림부가 발표하는 저수율(50%)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며 실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천의 경우 98년까지 별도 사업이 없다가 99년 임진강 홍수 때 5백억원의 하천 준설 예산이 긴급 편성된 뒤 나름대로 사업이 시행되다가 올해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예산이 4백억원으로 깎였다.

세종대 이창훈 교수(토목공학)는 "바닥만 파내면 되는 저수지 준설에 비해 하천 준설은 물의 속도와 방향, 상하류의 댐 등을 감안해야 홍수를 막고 갈수기에 충분한 유량을 확보할 수 있다" 며 "토사를 채취해 파는 목적으로만 이뤄지는 준설작업은 재고돼야 한다" 고 강조했다.

태길종합건설 천동현 부장은 "지자체들이 준설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데다 준설할 때도 면허가 없는 업체에 맡기는 바람에 물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환경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있다" 고 지적했다.

◇ 대책〓재해방지용 수자원관리와 농업용수 정책을 연계하는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을 먼저 마련한 뒤 여기에 맞춰 준설계획을 짜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수.가뭄 피해가 나면 각 부처에서 대책을 쏟아냈다가 잠잠해지면 정부 지원이 줄어드는 점도 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우효섭 박사는 "준설에 따른 비용과 그 효과(저수용량 확대)를 따져야 하겠지만 요즘 같은 가뭄 때 준설한다면 비용도 적게 들고 공사도 수월해 효과가 크다" 고 말했다.

이효준.차진용.황성근 기자

사진=김진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