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백령도의 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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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천안함은 이런 ‘전투준비’도 해보지 못하고 침몰했다. 내부 화재나 폭발이라면 함교에 보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럴 틈도 없었다. 짧고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 폭발력이 엄청났다는 증거다. 기관실 기름증기가 폭발했을까, 탄약고가 폭발했을까 하는 가정들은 믿기지 않는다. 유증은 화재이고, 화재라면 그렇게 침몰하지 않는다. 탄약고는 신관과 장약이 분리되어 있고 접근이 어렵다. 군함에서 생활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기초상식이다. 퇴함 훈련도 했다. 침몰 시 배를 버리고 바다로 뛰어드는 훈련이다. 그런 훈련도 소용없을 정도로 급박했기 때문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천안함 소식을 접했을 때 내 마음은 백령도 바로 그 바다에 가 있었다. 37, 38년 전 승조원 100명에, 천안함과 비슷한 1000t급 규모의 59함(퇴역)을 타고 함교를 지키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불과 1년도 안 된 해군소위. 동쪽으로는 백령도의 해안 불빛이 보이고 바다는 칠흑 같았다. 밤바다는 고요하고 평화롭기까지 했다. 이 수역은 어로통제 구역이므로 어선도 들어갈 수 없다. 배는 지정된 작전구역을 천천히 왕복한다. 적어도 그때는 북한 잠수함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수심이 낮아 잠수함의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게 통설이었다. 기뢰는? 기뢰는 적 함정의 공격으로부터 항만을 보호하기 위해 부설한다. 우리 함정이 작전을 하는 지역에 우리가 기뢰를 부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도 기뢰를 주의하라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은 동해에서 불과 몇 백m 앞까지 잠수함을 침투시켜 간첩을 실어 날랐던 것이 확인된 만큼 이런 통설이 맞지 않을 듯하다. 기뢰라면 누가 부설했을까?

지금은 원인을 모른다. 보안을 중요시하는 군이라는 특수성과, 해군이라는 전문성 때문에 조사가 더 폐쇄적일 수 있다. 특히 원인에 따라 대응이 달라야 하고, 책임 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폐쇄적인 조사일수록 파장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원인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북한의 짓이라고 가정해 보자. 지금 북한은 일체의 반응이 없다. 정규전투가 아니고 일종의 테러이기 때문에 은밀하게 했을 것이다. 북한에 특이 동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조사 결과가 그렇게 나와도 북한은 부인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상대가 부인하는데 우리가 보복할 수 있을까? 만약 보복한다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사태가 겁이 나 청와대가 앞장서 북한 연계성을 축소하는 발언을 하는가? 사실이 그럴 때 북한은 이 정권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내부 안전사고 역시 피하고 싶은 결론일 것이다. 몇 달 전 대청해전을 승리했다고 으쓱했는데 엄청난 인명과 함정까지 잃었으니 위상은 떨어지고 책임이 따를 것이다. 정규 해군이 원인 모를 테러를 당했다 해도 불명예요, 내부 안전사고라 해도 문제다. 결국 해군은 안팎곱사등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최선의 방법은 원칙대로 가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이다.

평택 함대사령부에서 오열하는 가족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자식을 나라에 바친 것이다. 우리 지도자들이 안보회의를 열고, 현장을 방문하는 모습들이 겹쳐진다. 그들 중 군 복무조차 안 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끄럽지 않았을까. 우리는 희생된 병사를 최대한 예우해야 한다. 가족들도 슬픔과 고통이 이루 말할 수도 없겠지만, 오히려 비통한 눈물을 참고 견디어 주기를 부탁드린다. 자식을 나라에 바친 부모의 절제된 슬픔이 실종된 병사들의 명예를 지켜주는 길이다.

“검푸른 파도 삼킬 듯 사나워도 나는야 언제나 바다의 사나이…사나이 한평생 세월로써 못 재는 것, 꿋꿋하게 살다가 사내답게 죽으리라. 아! 바다는 나의 고향, 나의 집은 배란다.” ‘바다의 사나이’들은 조국을 위해 사랑하던 천안함과 함께 그렇게 파도 속에 묻혔다.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 그 길은 우리가 원인을 둘러싸고 분열해서도, 꽁무니를 빼서도 안 된다. 단합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을 빨리 통일시키는 것이다.

문창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