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찾아온 ‘코스닥 퇴출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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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올해도 어김없이 불청객이 찾아왔다. 해마다 회계 감사철이면 불거지는 ‘코스닥 퇴출 공포’ 얘기다. 그런데 올해는 그 강도가 더 세다. 외부 회계감사법인에서 ‘감사의견 거절’ 판정을 받아 상장 폐지 사유가 발생한 기업의 숫자가 지난해보다 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6일까지 네오세미테크 등 23개 사가 감사 자료를 충분히 제출하지 않는 등의 이유(감사범위 제한)로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을 거절당했다. 네오세미테크는 시가총액이 4000억원에 이르는 코스닥 27위 업체다. 회사 측은 “회계 감사기관이 바뀌면서 회계 기준이 바뀌어 일부 오해가 생겼다”며 “새 회계법인의 의견에 따라 2009년 실적을 정정 공시했고, 상장 폐지를 막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네오세미테크는 25일 정정공시를 통해 지난해 매출을 1453억원에서 979억원으로, 당기순이익은 246억원 흑자에서 224억원 적자로 수정했다.

또 12월 결산법인의 감사보고서 제출 마감인 31일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아직 17개 사가 감사보고서를 내지 않고 있다. 이 중에서도 상장 폐지 사유가 발생하는 기업이 상당수 나올 것으로 증권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연초부터 3월 사이 감사 시즌에 의견 거절을 받는 업체가 올해는 지난해의 26개보다 많이 늘어날 것이란 얘기다.

감사의견 거절 외에 올해 2년 연속 자본이 50% 이상 잠식되는 등의 이유로 퇴출 위기에 몰린 곳도 5개에 이른다. 상장 폐지 사유가 발생하면 일단 주식 거래가 정지된다. 또 해당 기업의 이의신청이 있으면 퇴출 사유를 해소하도록 기회를 준다. 이의신청이 없으면 한국거래소가 상장 폐지 여부를 심사한다.

코스닥 시장에서 감사 의견 거절을 받는 기업이 늘어난 것은 일부 기업의 불투명한 회계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는 탓도 있고, 회계법인들이 예전보다 철저한 감사 잣대를 들이댄 영향도 있다. 대우증권 김평진 스몰캡(중소형주) 팀장은 “지난해 분식 회계를 공모한 회계법인이 영업 정지를 당하는 등 처벌이 강화되면서 회계감사가 보다 깐깐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는 것도 회계법인들이 원칙을 철저히 적용하고 있는 요인이다. 김 팀장은 “기업의 불투명한 회계가 설 자리를 잃게 되는 셈이어서 투자자들로서는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상장 폐지 사유 기업이 쏟아져 나오면서 해당 종목의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보게 됐다. 28개 상장 폐지 사유 업체에 들어간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은 3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돈을 물릴 위험이 커진 소액주주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긴급히 카페를 만들어 해당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28일 “우회상장 기업에 대해서도 증권선물위원회가 외부 감사인을 강제 지정할 수 있도록 제도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는 외부 감사인 강제 지정 대상에 ‘다음 사업연도 상장예정 기업’은 포함돼 있으나 ‘우회상장 예정 기업’은 빠져 있다. 우회상장은 비상장 업체가 상장 기업을 합병해 상장심사나 공모주 청약 등의 절차를 밟지 않고 곧바로 주식을 상장하는 효과를 얻는 것을 말한다. 네오세미테크는 코스닥 업체인 모노솔라를 합병한 뒤 지난해 10월 우회 상장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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