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직영사찰 시행 연기’로 물꼬 틀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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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8일 명진 스님(왼쪽 아래)이 일요법회를 마친 뒤 신도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명진 스님은 “다음 주 법회는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조계종 총무원의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을 둘러싼 논박이 3주째 접어들었다. 28일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열린 일요법회에서 주지 명진 스님은 총무원과 정권의 밀착을 비판하며 다시 한번 ‘외압설’을 주장했다. 총무원은 거듭 부인하고 나섰다. 논란이 오래되다 보니 사태의 본질이 정치적 문제인지, 절집 문제인지 헷갈릴 정도다.

돌파구는 없을까. 종단 일각에선 ‘봉은사 직영사찰 시행 연기안’을 거론하고 있다. 벼랑 끝으로 치닫는 총무원과 봉은사 양측에 ‘물꼬’를 틀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정치 이슈인가, 절집 문제인가=명진 스님은 ‘정치권 외압설’을 내세우고 있다. 총무원과 여권이 손을 잡고 봉은사를 압박해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를 보는 시각은 절집 내부에서도 갈린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좌파 주지’ 발언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을 정치권과 직결시키는 건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절집 문제가 정치 이슈로 바뀌면서 오히려 본질을 벗어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논란의 불똥이 정치권으로 번진 모양새지만 사안의 본질은 ‘절집 문제’라는 것이다.

◆해법은 있나=명진 스님은 “직영사찰 지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승복을 벗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총무원 측도 최고 의결기구인 ‘중앙종회의 승인’을 되돌리기엔 정치적 부담이 막대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타협점이 없어 보인다.

현재 직영사찰 지정에 대한 종회 승인은 났지만, 시행 시점은 못박지 않으면서 현재의 봉은사를 수용하자는 견해가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양측 다 공멸할 것”이란 강한 우려가 조계종 안팎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가 문제해결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봉은사 시스템은 뭔가=봉은사는 무엇보다 총무원의 일방적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1980년대 주지 자리를 놓고 조직폭력배까지 동원될 정도로 과거 ‘조계종단의 싸움판’이었던 봉은사를 건실한 사찰로 돌려놓은 지난 몇 해의 노력을 총무원 측이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명진 스님이 사찰 예산 공개, 신도들의 불전함 관리와 사찰 운영 참여 등 다른 절에서 찾아보기 힘든 ‘봉은사만의 시스템’을 만들어왔다는 평이다. ‘봉은사 시스템’에서 한국 불교의 미래를 찾는 이도 꽤 있다. 또 주지를 잘 살면, 그 다음 임기를 보장해 주는 게 절집의 일반적인 정서다.

◆소통 없이 끼운 ‘첫 단추’=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에는 공개 논의과정이 생략됐다. 총무원 종무회의 의결부터 중앙종회 승인까지 1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총무원 측도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절차적 문제를 인정한다”고 했다.

총무원은 ‘강남·북 포교벨트 강화’ ‘종단에 대한 봉은사의 기여도’란 명분을 세웠으나 봉은사 신도들은 이에 수긍하지 않고 있다. 직영사찰 승인 과정에서 봉은사 사대부중이 철저히 소외됐기 때문이다. 또 총무원은 ‘강남·북 포교벨트 강화’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내놓은 적이 없다. 이제부터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종단 안팎에선 “총무원장이 선거 때 여러 계파 및 문중과 이런저런 약속을 했다. 그런 논공행상을 해결하는 차원에서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이 이뤄진 것”이란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소통을 생략한 첫 단추’로 인한 파국은 예견된 것이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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