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금연 '따라배우기' 북한 골초들 속만 태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담배를 삼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흡연은 명백히 건강에 해롭습니다. "

북한의 정부기관지 민주조선이 1999년 11월 20일 흡연 폐해를 강조하며 인용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말이다.

金위원장은 지난해 5월 중국 방문 때도 "건강을 생각해 금연과 절주를 하고 있다" 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99년 하반기 이후 그가 담배를 들고 있는 모습은 북한 언론보도에서 일제히 사라졌다.

金위원장이 직접 금연 방침을 밝히자 북한 당국은 지난해부터 대대적인 금연 캠페인을 벌였다. 당기관지 노동신문을 비롯한 주요 신문.방송은 흡연의 폐해를 알리는 동시에 국제적인 금연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담배는 심장에 겨누어진 총과 같다" 는 섬뜩한 경고문까지 나왔다.

올 들어 흡연자에 대한 규제는 더 강화되는 분위기다.

북한 당국은 요즘 외화상점 판매용 외에는 외제담배 수입을 금하고 있고 중앙당 청사 등 공공건물과 장소에서 금연 방침을 위반하면 신분상의 강력한 제재를 당하고 있다고 탈북자들은 전한다.

근로자들이 자주 찾는 평양선술집 등도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골초' 들의 설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공공장소와 거리.사무실에서 무질서하게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김수학 보건상은 지난해 8월 "전사회적 담배근절운동을 벌인 결과 흡연량을 줄이거나 완전히 피우지 않는 사람들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면서 "조선은 21세기를 담배없는 세기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더욱 활발히 진행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평양시민들에게 인기가 높은 '건설' '평양' 등의 담배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듯하다. 최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북측 안내원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당신은 왜 금연하지 않는가" 라고 묻자 "끊긴 끊어야 하는데 20년 넘게 피운 담배를 하루 아침에 끊을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하더라고 한다.

북한 당국이 간부들에게 "책상 앞에 있지 말고 현장을 살피라" 고 요구하면서 일부 간부들의 흡연량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북한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 金위원장의 '교시' 도 애연가들에게만큼은 1백% 먹혀들지 않는 모양이다.

정창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