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 선수쪽에서 달라붙어 '살려달라' 외쳤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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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이 침몰한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27일 해경과 해군이 함정과 헬기를 동원해 실종 장병 수색을 하고 있다. 백령도=김태성 기자

"병사들이 천안호의 선수쪽에 달라 붙어서 '살려달라'고 외치는가 하면 물에 뛰어든 병사들도 있었습니다."

연안부두를 떠나 6시간에 걸쳐 닿은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파도는 거셌다. 구조작업으로 어수선한 백령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난밤의 구조상황을 설명하는 얘기가 돌고 있었다. 백령면 장촌리의 몽돌해안에는 해병대원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파도에 밀려 올지도 모를 천안호의 잔해 수색작업 이 한창이었다. 마을로 통하는 도로에는 헤드라이트를 켠 군용지프들이 분주하게 달려 긴장감을 자아냈다. 해변으로 나가는 길목마다에는 임시 검문소를 설치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어업지도선 가운데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227호 어업지도선 선장 김정석(56)씨는 함정에 남아 있던 병사 1명과 물에 빠진 병사 1명을 구조해 백령도로 후송했다. 김 선장은 "현장에 도착해 머리에 부상을 입은 병사, 하사였는데 담요에 싸서 옮겨실었다. 그 사이에 전탐장 한명이 구명뗏목에 로프를 묶기 위해 물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216호 어업지도선 선장 김윤근(58)씨는 "밤 10시께 연락을 받고 도착하니 천안호는 이미 선수 부위만 해상에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고속경비정들이 병사들을 구조해 후송한 뒤여서 김 선장의 배는 함장용 등 구명동의 4개만 수거해 돌아왔다. 김 선장은 "거센 파도로 천안호가 하룻밤새 연화리 앞바다에서 장촌리 앞바다로 밀려와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를 포함한 백령도 주민, 주둔 군인, 어업지도선 선원들은 밤새 거친 파도속에서 구조작업을 펼쳤다. 구조작업은 26일 오후 10시께부터 이튿날 오전 3시 30분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어업지도선은 27일 오전에도 사고해역으로 출동했으나 파도가 워낙 높아 철수했다.

장촌리·중화동·두무진 등 사고 해역 주변 주민들은 대부분 침몰 당시를 보지는 못했다.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인데다 밤이 깊었기 때문이다. 군이 구조를 위해 조명탄을 쏜 뒤에야 바다의 상황을 알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여기 주민들은 평소처럼 생활하고 있어요. 어제 저녁부터 군인들이 정신없었죠. 민간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으니 우리들은 평소처럼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어요.” 백령도에서 개인 택시 운전을 하는 정영암(51)씨는 “어제 밤 10시 경 시내에 군인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택시 잡느라 난리가 났죠”라고 말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바닷가 쪽에서‘쿵쿵’소리가 나면서 환하게 밝아졌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도 주민들은 무슨 일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는데 나는 군인들 태우고 부대에 가면서 배가 침몰했다는 걸 바로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장천리 주민 배정진(60)씨는 "백령도는 북한에서 가장 가깝지만 그간 비교적 평온했다"며 "원인이 뭔지는 모르지만 젊디 젊은 병사들이 사고를 당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고해역에서 직선거리로 4.3마일(6.9Km) 떨어진 대청도 선진항. 27일 항구에는 조업을 나기지 못한 어선 20여척이 묶여 있었다. 해양경찰과 군당국의 어업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청도 해경파출소 관계자는 “오늘 아침 조업부터 허가하지 않고 있다”며 “상황을 지켜봐야 겠지만 한동안 조업을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청도 선진항 50여미터 거리에 있는 해군 고속정 기지에는 군인 2명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주민들은 고속정 5척이 새벽에 들어오더니 오전에 사고 해역으로 다시 떠났고 말했다. 이날 대청도 기상상황은 어제와 같은 ‘황천5급’이었다. 수 톤 규모의 레저 보트의 출항이 금지되는 규모다. 해군은 황천급수(1~5급)를 사용해 파도의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 급이 낮을수록 쎈 파도다.
26일 밤 천안함 구조자들의 ‘긴급 호송 작전’이 이뤄진 대청보건지소는 텅 비어 있었다. 오후 11시쯤 부상을 입은 군인 5명이 치료를 받기 위해 고속정으로 이송됐다. 주민 이복순(70ㆍ여)씨는 “밤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가보니 군인 2명이 들것이 들려 보건소로 들어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군인 3명은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며 “링겔을 꼽고 있는 모습도 봤다”고 말했다. 이씨는 “백령병원에 자리가 부족해 고속정으로 이동해 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군인들은 오전 12시쯤 헬기를 통해 육지로 이송됐다. 사고 지역에서 직선 거리로 4마일 떨어진 옥죽포에서는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수색에 나선 해군이 사용한 탐조등과 조명탄 때문이다. 그물을 손질하던 주민 김모(53)씨는 “밤시간인데 너무 밝아 밖에 나가보니 백령도와 인접한 바닷가가 환해 놀랬다”며 “함포 발사 소리는 듣지 못했고 뉴스를 보고나서야 사고 소식을 접했다”고 말했다.

백령도=정기환·임현욱 기자 대청도=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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