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퍼뜨리는 ‘천사 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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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유전자 조작된 모기의 흡혈 빨대를 통해 분비되는 리슈마니아증 항원(아래 붉은색 부분)이 포함된 타액. 위 빨대는 야생 모기의 것으로 항원이 나타나지 않는다.

모기는 골칫거리다. 사람과 동물을 못살게 굴고 뇌염 같은 병을 옮기기도 한다. 일본 연구진이 신종 모기를 개발했다. 병을 옮기는 대신 백신을 퍼뜨리는 ‘천사’ 노릇을 한다.

일본 지치의과대 시게토 요시다 박사 연구팀은 모기의 유전자를 조작해 리슈마니아증이란 질병에 대한 백신을 침으로 분비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모기가 사람이나 동물을 물 때 흡혈 침을 타고 백신이 전달된다. 피가 응고되지 않게 하는 성분을 침에 섞어 숙주에 주입한 뒤 피를 빨아먹는 모기의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연구 결과는 영국 학술지 곤충분자생물학 3월호에 발표됐다.

리슈마니아증은 모래파리에 의해 전염되는 질병으로 피부병을 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는 4종 법정 전염병이며, 치료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다.

연구팀은 리슈마니아증의 항원에 해당하는 ‘SP15’라는 단백질을 모기가 침에서 생산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했다. 그런 뒤 실험용 생쥐가 이 모기들에게 물리도록 했다. 쥐들의 몸속에서는 리슈마니아증에 대항하는 항체를 생산해 냈다. 유전자 조작 모기가 백신을 나르고, 그 모기에게 물린 쥐에서 백신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항체가 나타난 쥐에게 실제 리슈마니아증을 옮겨 그 병에 걸리는지 안 걸리는지 알아내는 실험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런 실험을 하기가 기술적으로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실험 쥐들이 모기에게 물린 횟수는 1500번에 이른다. 모기가 득실대는 곳에 사는 사람은 하룻밤에만 100번 이상 물리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많은 횟수는 아니라는 게 연구진의 말이다. 연구팀은 말라리아 백신을 침으로 분비하는 유전자 조작 모기도 개발했다.

유전자 조작 모기는 금세 상용화할 수 있는 꿈의 기술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사람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많다는 것이다. 모기에게 물리는 횟수를 조절할 수 없고, 백신을 맞기 싫은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모기에게 물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병통제본부 같은 곳에서 이런 모기의 방출을 쉽사리 허용치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보는 연유다. 그러나 동물용으로 쓸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물은 백신의 양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백신을 맞는 데 허가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 연구는 유전자 조작 곤충 활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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