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장 이 문제] 놀이터 옆에 '철골조 흉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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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서울 서대문구 홍은3동 현대 APT 단지 뒷편 백련공원.울창한 아카시아 숲과 근사한 암벽 등으로 아파트 주민들에게 소중한 휴식처가 돼어왔다.

그러나 지난 2월초 스위스그랜드 호텔 부대 시설인 렉스 골프연습장의 주차장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나무를 베어내고 암석을 깨는 작업이 진행됐으나 처음에는 주민들은 무슨 공사인지 몰랐다. 공사안내 표지판에는 '백련근린공원 조성공사' 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공원과 가장 인접한 201동 주민대표 고영준(50)씨는 "공원을 만드는줄 알고 소음을 참아왔는데 3월말께 15m 높이의 철골이 올라가 깜짝 놀랐다" 고 말했다.

주민 최명자(39.주부)씨는 "공사가 끝나면 주차장에서 아파트 내부가 들여다 보여 사생활 침해가 뻔하다" 며 "특히 바로 아래 어린이 놀이터가 있어 위험천만" 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아파트에서 불과 30m 떨어진 공원녹지지역에 아파트 7층 높이의 철골 주차장이 들어선 것은 서울시와 서대문구청의 허술한 공사 심의 때문.

호텔측은 공사 이전에는 언덕 위.아래에 두개의 주차장을 운영했다. 그런데 아래 주차장 이용객들이 골프채를 들고 2백m가량 걷는 불편을 겪자 호텔측은 서울시에 주차장 공사를 위한 심의를 요청했다.

지난해 7월 심의를 맡은 서울시는 "도면만으로 검토가 불가능하다" 며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사업자측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조감도와 '앞으로 민원발생 소지가 없다' 는 구청 공원 녹지과장의 말만 믿고 심의를 통과시켰다.

당시 심의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최근 공사장을 둘러본 뒤 "이렇게 생긴 구조물이 들어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며 심의 과정이 허술했음을 인정했다.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서대문구청은 사업자측에 뒤늦게 공사 취소를 요청했다.

구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을 구청에서 모두 부담겠다고 했으나 사업자측에서 거절해 난처하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호텔측은 "주차장 공사와 관련해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 며 공사를 강행해 이달말 준공할 방침이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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