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때문에 … 강남구 파격 출산장려금 줄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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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A씨 부부는 지난해 7월 넷째 아이를 출산한 뒤 서울 강남구청에서 지급하는 500만원의 출산장려금(출산양육지원금)을 받았다. 하지만 500만원을 받은 A씨 부부는 한 달 뒤 다른 지역으로 이사갔다. 강남구가 파악한 결과 A씨 부부는 출산 1년 전 주소지를 개포동으로 옮겼고 출산 뒤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이사간 것으로 밝혀졌다. 강남구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출산장려금을 받은 가구는 모두 1495가구로 이 중 145가구(9.7%)가 A씨처럼 출산장려금을 받고 다른 지역으로 전출갔다.

강남구가 24일 다른 기초단체보다 10배 가량 많이 주던 출산장려금의 액수와 지급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라승일 가정복지과장은 “출산장려금 상한액을 3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추고 두 차례에 걸쳐 지원하던 방법도 개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남구는 지난해 5월부터 신생아를 낳는 가정에 둘째는 100만원, 셋째는 500만원, 넷째는 1000만원, 다섯째는 2000만원, 여섯째는 3000만원을 지급했다. 출산 때 절반을 주고 나머지는 1년 후 일시불로 줬다. 하지만 앞으로는 둘째 아이와 셋째 아이를 낳은 가정에는 각각 100만원과 500만원을 그대로 지원하되 넷째 아이부터는 1000만원만 준다. 또 지급방식도 출산 때 절반을 주고 나머지는 1년 후 매달 25만원씩 나눠서 주기로 했다. 넷째 아이를 낳았을 경우 500만원을 출산 때 받고 1년 뒤부터는 25만원씩 20개월에 걸쳐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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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가 이처럼 출산장려금 상한액과 지급방식을 변경한 것은 이른바 ‘출산장려금 먹튀’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라 과장은 “산모들이 강남구로 원정출산하거나 출산 후 전출하는 문제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 그간 계속 제기돼 온 다른 기초단체와의 형평성 문제도 고려됐다. 강남구의 한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 구는 왜 강남구처럼 출산장려금을 많이 안 주느냐’는 민원을 해당 지자체는 물론 중앙부처에도 많이 냈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연간 예산이 1조원 정도로 전국 230개 기초자치단체중 가장 많아 ‘부자구’로 불린다. 지난해 출산장려금으로 지급한 액수는 약 10억원으로 1조원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쯤 된다. 강남구는 2007년 7월부터 출산장려금을 지급했다. 당시에는 다자녀가구 중 둘째를 낳으면 50만원, 셋째는 100만원, 넷째는 300만원, 다섯째는 500만원을 일시불로 지급했다. 하지만 다른 기초자치단체가 잇따라 출산장려금제를 도입하자 지난해 5월부터 파격적인 금액을 내걸었다.

출산장려금은 2006년께부터 전국의 군청과 구청 등 기초단체들이 앞다퉈 도입했다. 인구가 줄면 지자체의 세수가 감소하고 지방교부세가 줄어든다. 또 지자체 조직은 물론 직제까지 축소돼 구청 직원들의 자리도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대구나 대전시, 전북도 같은 광역지자체는 기초단체와 일정 비율로 나눠 지원하기도 한다. 보건복지부 김용수 저출산인구정책과장은 “출산장려금은 기초자치단체가 자체 예산으로 자발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라며 “출산장려금보다 보육시설 지원이나 시설개선 같은 인프라 구축 사업이 장기적인 출산율 제고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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