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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림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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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7세기 유럽의 교육신학자 코메니우스가 1658년에 지은 『세계도회(世界圖繪)』는 ‘세계 최초의 그림책’으로 불린다. 꽃·하늘·곤충 같은 세상의 주요 사물과 고기잡이·목축·결혼 같은 인간의 제반 활동을 150개 그림으로 설명한 책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림이 아이에게 흥미를 주고, 내용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한다. 그림책인 동시에 유아기 언어 입문을 위한 시각적 교육서였던 셈이다.

‘그림을 넣은 교육서’로만 보면 우리 역사가 더 오래된 게 아닐까 싶다. 권근이 고려 공양왕 2년(1390년)에 만든 『입학도설(入學圖說)』(보물 1136호)을 봐도 그렇다. 초학자(初學者)를 위한 성리학 입문서인 이 책엔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 등 40종의 그림이 들어 있다. 권근은 책 서문에 “내게 대학과 중용을 배우는 초학자들에게 거듭 자세히 설명해 줘도 이해하지 못하므로 그림을 그려 보이고 의미를 해석해 줬다”고 적었다.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만든 그림책이었다는 얘기다. 굳이 따지자면 서양보다 무려 300년 가까이 앞선 것이다.

요즘 어린이들이 보는 ‘현대 그림책’의 시대는 1850년 이후 영국에서 시작됐다. 랜돌프 콜더콧, 케이트 그린어웨이, 월터 크레인 같은 그림 작가들이 어린이를 위한 다채로운 그림책을 내놓으면서 ‘그림책의 황금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한국에선 국내 작가들의 그림책이 활발하게 나오기 시작한 게 고작 10년 남짓이다. 우리 아이들이 대부분 수입 번역 그림책을 봐온 것이다.

그러나 역량 있는 작가가 많이 발굴되면서 지금은 양상이 다르다. 한국 그림책이 세계 출판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수십 개 나라에 저작권 수출까지 하고 있다. 『동물원』(비룡소), 『반쪽이』(여원미디어), 『팥죽 할멈과 호랑이』(웅진싱크빅) 등 수백 종을 헤아릴 정도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도서전인 ‘2010 볼로냐아동도서전’이 어제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개막했다. 한국 출판사 50여 곳이 다양한 어린이 책을 출품했다. 이 중 『돌로 지은 절 석굴암』(김미혜·최미란)이 아동도서 분야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았고, 신현아 작가 등 6명이 ‘올해의 일러스트레이션 전시 작가’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권근의 후예들’인 한국 그림책 작가들이 세계의 동심(童心)을 사로잡는 게 꿈만은 아니지 싶다.

볼로냐=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