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농식품부의 변화 끝장토론이 끝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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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농림수산식품부의 한 공무원이 털어놓은 푸념이다. 혼자 생각이 아니라고도 했다. 농식품부 공무원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이라는 얘기다.

21일 오후부터 무박2일로 진행된 농식품부 워크숍은 외부에는 쉬쉬했던 문제점을 스스로 끄집어내는 자리였다. 그동안 야심차게 준비한 ‘농업비전 2020’을 실행에 옮겨야 하는데, 그런 자괴감을 털어내지 못하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었다.

워크숍은 농식품부의 의도와 관계없이 일단 흥행에는 확실히 성공했다. 언론이 크게 보도했고, 다른 부처에서도 문의가 온다고 한다. 무엇보다 공무원들이 ‘망하는 길’이라는 극단의 가정을 한 게 눈길을 끌었다.

잠도 자지 않은 채 쏟아낸 발언들의 수위도 꽤 높았다. 일회성·시혜성 생산 보조금, 정책이 현장과 괴리되는 탁상행정, 변화를 거부하는 철밥통 문화, 외부와의 소통이 없는 끼리끼리 풍토, 비전의 부재…. 그런 자아비판은 안팎의 공감을 끌어냈다. “장관은 현장을 세 번 찾지 않은 공무원이 만든 정책에는 사인하지 말아 달라”는 거북한 호소를 장관부터 하급직원까지 함께 진지하게 경청했다.

하지만 조금 냉정하게 들여다보자. 이번 워크숍에서 나온 얘기는 그동안 언론과 전문가들이 누누이 지적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표현 방법이나 발언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다음 단계, 즉 실천이다. 허심탄회하게 토해낸 의견, 눈치 보지 않고 던진 비판, 역발상에서 이끌어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액션 플랜을 짜고 중간중간 이를 점검하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 그 결과 실제로 뭔가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워크숍은 사전 각본에 따른 ‘약속대련’에 불과하다.

워크숍의 취지에 대해 농식품부는 “망하는 길을 알면 살길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망하는 길을 알면서도 그 길을 계속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농식품부가 그 길에서 벗어나려면 이제부터 바쁘게 변화하는 수밖에 없다.

최현철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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