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공격적 변신 박찬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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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최근 박찬호의 경기를 유심히 지켜본 팬이라면 볼을 던지기 위한 준비자세에서 표정이 약간 달라졌다고 느꼈을 것이다. 마운드에서 포수의 사인을 보면서 때때로 심호흡하는 습관은 그대로지만 공을 던질 목표 지점을 쏘아볼 때 아래턱이 이전에 비해 약간 앞으로 나온다. 지난달 30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전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행동으로 공격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박선수에게는 알레르기성 비염 증세가 있다. 그래서 입으로 숨쉬는 경우가 많다. 입을 벌린 채 아랫니와 윗니를 맞대고 숨을 쉬면 다소 거칠게 보인다. 그러나 이전까지 마운드에서 박선수의 인상은 턱을 내밀며 도전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다소곳하게 얌전한 동작을 유지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기 시작과 함께 심판을 향해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는 박선수가 1994년 미국에 처음 건너갔을 때 시작한 것으로 동양 문화, 특히 예의바른 한국 문화를 박선수의 특징으로 삼아 메이저리그에 부각시키기 위한 동작이었다.

당시 심판들은 박선수의 행동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고 타자들까지도 생소하다는 반응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에서 온 친구라 저렇게 하는구나' 하고 박선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박선수가 심판과 타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행동은 그가 신인급이었을 때는 '스스로를 부각시키기 위한 동작' 으로 여겨졌지만 그가 붙박이 메이저리거가 되고 팀 중참으로 성장하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는 반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동작 없이도 이젠 '찬호팍' 하면 다른 선수나 심판이 모두 알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또 경기 시작과 함께 상대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것이 투수 뒤에서 수비하는 동료 야수들을 불쾌하게 만든다는 말도 있었다. 무엇보다 남들과 다른 행위로 '튀는' 것보다는 똑같은 모습으로 경쟁하는 것이 당당하는 지적이었다.

박선수는 2년 전 여름부터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예의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증거다. 메이저리그라는 치열한 생존의 정글을 당당히 혼자의 힘으로 헤쳐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는 뜻이다.

지난해 18승10패로 정상급 선발투수 자리에 올라선 이후 올시즌 제구력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박선수는 아래턱을 치켜들고 공격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타자를 유인하기보다는 정면승부하겠다는 암시였고 그 결과 필요없는 볼이 줄어들었다.

박선수는 공격적 투구로 지난달 30일 필라델피아전과 5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13이닝 동안 볼넷은 단 한개만 내주며 제구력의 안정을 찾았다.

고개숙여 인사하는 얌전한 박찬호(94년)에서 인사없이 상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된 박찬호(99년), 그리고 턱을 치켜들고 타자를 내려다 보며 공격하는 박찬호(2001년)로의 변화는 그의 성장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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