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입점한 유럽 최대 신사화 브랜드 ‘로이드’… 122년 장수 비결 알아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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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로이드사 독일 슐링엔 본사 공장 벽에 걸려 있는 구두 부품도. [롯데백화점 제공]

‘출산 여직원에게 무기한 휴가. 경제적으로 곤경에 빠진 직원에게는 임금 20% 추가 지급. 직원이 자격증을 따거나 진학을 위해 공부할 때 휴직 보장은 물론 생활보조비 지급…’.

한국 기업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업무 여건을 자랑하는 회사가 있다. 122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 최대의 신사화 브랜드 로이드(LLOYD)다. 한 해 약 200만 켤레의 구두를 생산하는 로이드의 연간 매출은 1억 유로(약 1600억원) 선. 공장은 독일 슐링엔 지역과 루마니아 두 곳이다. 루마니아 인건비가 동남아의 10배에 달하지만 ‘제대로 된 신발을 만들려면 제대로 된 생산환경을 갖춰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다른 지역에 공장 증설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방문한 로이드의 독일 슐링엔 본사는 신발공장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데 충분했다. 구두공장 특유의 코를 찌르는 접착제 냄새나 바닥에 널려 있는 가죽 조각은 없었다. 사무실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청결한 작업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이 공장에선 하루 2000켤레의 구두를 생산한다. 루마니아 공장은 하루 3700켤레. 국내 유명 브랜드 공장의 하루 생산량은 1500~2500켤레 정도다. 공장 곳곳에선 여유 있게 웃으며 일하는 직원들이 보였다. 이 회사는 동남아산 저가 구두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중반부터 매년 매출이 10% 이상씩 늘고 있다. 경쟁력의 비결은 직원 친화적 경영과 품질, 친환경 생산라인 등이다.

로이드는 직원 친화적인 경영으로도 유명하다. 독일 본사에서 일하는 500여 명의 직원 대부분이 인근 지역 주민들이다. 직원 스스로 근무시간을 정하는 ‘탄력근무제’와 원하는 업무를 맡을 수 있도록 한 ‘순환업무제’ 등을 일찌감치 도입했다. 원하는 사람은 60세 이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다.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다 보니 품질도 남다르다. 1985년 제네바 군축회담 당시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이 신발을 신은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엔 “정치보다 로이드 구두가 먼저 철의 장막을 넘었다”는 얘기가 돌았다.

로이드는 남자 구두 브랜드로는 세계 최대 수준인 900여 종의 디자인을 갖고 있다. 이 중 4분의 1가량을 매년 교체한다. 최종 생산단계에선 국가 공인 신발 장인인 슈마이스터의 검품을 거친다. 불량품은 바로 폐기한다.80년대 후반에 도입한 친환경 생산라인도 강점이다. 최근엔 최신형 압축기를 도입해 폐수 발생량을 절반 이하로 줄였다. 신발용 액세서리 도금에 사용되는 크롬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 회사 해외영업 임원인 라이너 투어는 “우리는 유럽연합(EU) 환경 권고치의 20%만큼(5g)만 접착제를 사용해도 튼튼한 신발을 만드는 기술을 가졌다”며 “게다가 친환경 접착제만 사용해 먹어도 해롭지 않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해외 파트너를 고르는 데도 조심스럽다. 로이드는 90년대 초반부터 한국 시장 진출을 검토해 왔지만 “남성용 패션 구두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미뤄왔다. 최근 롯데백화점과 코오롱 등이 직접 수입에 나서면서 한국 시장에 선보이게 됐다. 로이드는 현재 홍콩 등 전 세계 40여 개국에 진출해 있다. 롯데백화점 김훈성 구두 CMD(선임상품기획자)는 “좋은 제품을 현지에서 직접 수입해 판매한다는 방침에 따라 로이드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슐링엔(독일)=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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