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치] '신의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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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난 2월 이란은 혁명 22주년을 맞았다. 1979년 이슬람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끈 민중은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렸다. 왕정은 이슬람 공화국으로 탈바꿈했다.

그후 이슬람 원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신권(神權)정치가 시작됐다. 호메이니는 반신(半神)으로 그의 지시는 알라(신)의 그것과 같았다.

89년 6월 호메이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절대적이다. 이란 어디를 가도 호메이니 초상화가 걸리지 않은 곳이 없다.

호메이니가 구상한 정체(政體)는 '벨라야티 파기(이슬람 최고 율법학자의 통치)' 였다. 국가 주권은 알라의 것이므로 알라의 법을 가장 잘 이해하는 파기가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란혁명엔 모든 반(反)팔레비 세력이 참여했다. 혁명의 핵심세력은 호메이니가 이끈 종교세력이었지만 혁명의 불씨가 된 것은 의회민주주의자와 지식인들이었다.

호메이니는 비(非)종교세력과 권력투쟁에서 승리해 최고지도자가 됐다.

이슬람 공화국은 처음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슬람과 공화국 둘 중 어느 것이 먼저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율법학자의 의사와 민의(民意)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하는 문제다.

호메이니가 살아 있을 때는 논란거리가 아니었다. 호메이니의 권위에 도전할 어떤 세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메이니가 사망하고 알리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를 승계한 후 이란 정치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이란의 정치체제는 독특하다. 최고지도자 아래 입법.사법.행정부가 3권 분립 형태를 취하고 있다. 국가지도자운영회의에서 선출되는 최고지도자는 종신직으로 군 최고통수권을 비롯해 대통령 인준권, 국정조정회의 의장.대법원장.헌법수호위원 임명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또 국회의원 3분의2의 동의가 있으면 대통령을 해임할 수도 있다.

벨라야티 파기에 대해선 이슬람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전통주의자들은 이슬람이 현실정치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보수파는 현재의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한 세력인 현대주의자들은 국가가 국민에게 더 많은 책임을 지는 현대적 의미의 공화국을 원한다. 아직은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국민에게 권력을 넘겨줄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란 국민은 더 이상 '신의 지배' 를 원치 않는다. 97년 대통령선거에서 율법학자 가운데 중간 서열에 불과했던 개혁파 모하마드 하타미가 전체 투표 70%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것은 국민의 의사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하타미는 개혁을 추진해 왔으나 본질적 개혁은 보수파의 방해로 번번이 좌절됐다. 이에 대한 국민 특히 청년층과 여성들의 반발은 폭발 직전이다.

다음달 8일 실시될 대통령선거는 개혁에 대한 국민투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하타미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하타미와 개혁파는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보수파와 대결전(大決戰)을 벌일 것이다.

정우량 편집위원(테헤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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