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러기 책동네]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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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제목에서 풍기는 강한 주제의식이 왠지 진부한 느낌을 주지만, 천만에. 장편동화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 기발한 상상력에 "어, 어" 소리가 절로 나는 공상과학소설이다. 그렇다고 우주비행선이나 외계인이 등장하는 건 아니다.

딱 요즘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쯤, 그러니까 20년 뒤 쯤의 농촌이 배경이다. 첨단과학기술이 만들어낼 만한 미래, 하지만 조금은 우울한 미래의 모습을 통해 과학문명의 문제점을 생각해보게 하는 흔치않은 동화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의 어린이와 함께, 부모들도 진지하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

주인공은 K-32라는 지역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생 진희. 씨앗에도 '지적 재산권' 이란 것이 적용돼 '21세기 콜럼버스사' 같은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씨앗을 사야 하는데다, 시중에서 파는 씨앗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아예 꽃을 피울 수 없도록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진희 아버지가 몰래 쑥갓꽃을 피워 씨를 얻으면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이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룬다.

진희는 마침내 "모든 씨앗은 원래부터 그걸 키우는 모든 사람의 것" 이라는 것을 깨닫고 '씨앗을 맺을 꽃이 피고 나비가 찾아오는 땅' 을 밟고 사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따로 한국 이름이 있는데도 영어 이름을 더 많이 쓰는 진희의 반 친구 '암스트롱' , 인체 장기 이식용으로 유전자가 조작된 채 태어나 '생명' 이라기보다는 '쓸모에 따라 만들어진 물건' 인 돼지 이야기 등엔 작가의 날카로운 현실 비판이 녹아 있다.

'생명' 을 뜻하는 연두색만을 이용한 연필 스케치도 작품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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