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첨단기술 유출 막으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디지털 시대의 생명줄, 우리의 첨단 기술이 새 나가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안보는 단순히 남북한 대치상황에서 이뤄지는 강력한 군사력의 유지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보호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발생한 정보통신 관련 핵심기술들을 해외로 유출하려는 일련의 시도를 우리는 매우 우려한다.

얼마 전에 반도체 웨이퍼 검사장비 운영에 필수적인 핵심기술 자료를 해외 경쟁업체로 유출하려 했던 시도가 발생했다. 또한 미국계 반도체 장비회사에 웨이퍼 제조장비 설계도 등 핵심기술을 유출하려 했던 사건, 그리고 국내 온라인 게임업체가 개발해 출시하려고 했던 게임 관련 소스 프로그램을 사전에 유출하려 했던 시도 등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러한 현상은 몇 개의 일회성 사건으로 간주하기엔 매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개별 회사나 국가 전체적으로 미치는 잠재적 피해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2003년도 한국산업보안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1998~2002년 발생한 해외 기술유출 대상국으로는 중국 55%, 대만 15%, 일본 20%, 기타 15%로 우리의 경쟁국에 의한 기술유출이 대부분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 등 우리의 경쟁상대국과의 기술력 격차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총생산(GDP)의 41.5%(2003년)를 차지하고 있는 정보통신산업의 첨단기술이 유출되는 것은 스스로 우리 안방을 내주는 것과 같다.

첨단기술의 해외유출은 여러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나 무엇보다 사람의 문제라는 데 우리는 주목한다. 이는 대부분의 기술유출이 시설물 침투에 의한 것보다 주로 임직원에 의한 유출이라는 사실이 증명한다. 정부보다 업계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나름대로 조치를 취해왔다. 정부 역시도 98년 삼성.LG 등 국내 반도체업체의 첨단기술인 64MD램 기술이 대만으로 불법 유출된 사건 직후 첨단기술의 유출 방지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정부의 직접 개입에 따른 규제 강화보다 업계 스스로의 기술보호 노력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환경구축을 서둘러 지원하는 것이다.

먼저 필요한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 다행히 정부는 지난 1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예비.미수 및 음모죄의 처벌 추가 등 이전 법이 지니고 있던 문제점을 상당히 보완했다. 그러나 공개재판 규정의 경우 미국이나 일본처럼 소송과정에서 영업비밀의 비밀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실효성 있는 제도운영이 요구된다. 정부의 산업보안의식 강화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며 특히 부처 간 산업보안기능의 조정 부재로 기밀 유출에 대한 부처 간 유기적인 협력이 어려운 현실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미국은 국가방첩처(NCIX)를 둬 산업보안을 총괄 지휘.조정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새로운 기구 설립이 어렵다면 현재 민간기업과 관련부처를 연계, 운영하고 있는 'IT기술 해외유출방지협의회'나 주무기관인 특허청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셋째, 경영관리의 개선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체계적인 인적관리와 관련해 많은 기업이 혼선을 빚고 있는 문제는 서약서의 법적 효력이다. 기업들은 우선 판례가 제시한 기준에 맞게 서약서의 방식 및 내용 등 구체적인 부분을 표준화하는 노력을 하고, 정부는 산업보안 관련 구체적인 지침과 가이드라인 등을 제시해야 한다.

첨단기술 보호는 국가 생존의 문제다. 정부. 기업, 그리고 국민 모두 산업보안의식을 강화해 보이지 않는 국경의 파수꾼이 돼야 한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