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강연호 '월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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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랜 세월 헤매 다녔지요

세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그대 찾아

부르튼 생애가 그믐인 듯 저물었지요

누가 그대 가려 놓았는지 야속해서

허구한 날 투정만 늘었답니다

상처는 늘 혼자 처매어야 했기에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흐느낌

내가 우는 울음인 줄 알았구요

어찌 짐작이나 했겠어요

그대 가린 건 바로 내 그림자였다니요

그대 언제나 내 뒤에서 울고 있었다니요

- 강연호(1962~)의 '월식(月蝕)'

참으로 아름다운 연애시다. 대체로 고백투의 어법은 화자에게는 절실하지만 일방적인 하소연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시는 사랑의 고백을 월식이라는 자연현상 위에 너끈히 얹어놓음으로써 묘한 감동을 이끌어낸다. '나' 는 바로 '너' 라는 적막한 깨달음과 함께.

안도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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