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의 '신일본'] 下. 재정·구조조정 '메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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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일본 국민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에게 거는 가장 큰 기대는 역시 경제개혁이다. 개헌니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니 하는 정치공약이 많지만 피부에 와닿는 경제문제부터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29일 요미우리(讀賣)신문의 여론조사에서도 새 내각의 우선 과제로 경기대책(74.8%).재정재건(56.4%).부실채권처리(45.5%)가 1~3위에 올랐다. 고이즈미 총리도 유권자들의 위기의식이 근본적으로는 경제에 대한 불안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자민당 총재선거 때부터 경제정책 공약에 무게를 실었다.

그가 전 내각과의 차별화 전략으로 중점을 두고 있는 점은 구조개혁과 재정개혁이다. 그는 이를 새 내각의 경제운용의 두 기둥으로 삼고 있다. 총재선거에서도 "재정.구조개혁 없이는 경기회복이 불가능하다" 고 주장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올해부터 경기부양용 추경예산 편성 규모를 줄이고, 연간 국채발행액을 30조엔 이하로 억제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부실채권 정리의 속도를 높여 2~3년 내 금융불안을 해소하고 산업지원을 위한 금융시장의 기초여건을 조성할 계획이다. 반면 지금까지 자민당이 경기부양을 위해 애용해오던 대규모 공공투자 사업은 큰 폭으로 줄여나가기로 했다.

이런 알기 쉬운 경제정책 공약들이 일반국민에게는 큰 환영을 받고 있다. 불황의 원인을 역대 정권의 정책실패로 돌리고 과거와 차별화된 개혁정책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데에는 누구나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선명한 개혁정책의 구호는 내걸었지만 아직 구체적 대안이 나온 것이 없다. 예컨대 과감한 구조개혁을 실시하면 단기적으로 실업자와 기업도산이 늘어날텐데 이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보계획이 없다.

이 때문에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구조개혁의 칼을 서둘러 꺼내들 경우 오히려 감표요인이 된다는 당내의 반대도 만만찮다.

부실채권 정리도 뚜껑을 열고 보면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 현재 은행의 악성 부실채권의 60%가 건설.부동산.유통 등 3개 업종에 물려 있다. 이들 업종의 취업자수는 일본 전체 취업자수의 40%에 육박한다. 부실채권 정리의 고삐를 죌 경우 이들 중 상당수가 직장을 잃게 된다.

자민당으로서는 그만큼 감표 요인을 떠안는 셈이다.

개혁은 구호나 공약으로는 매력있을지 몰라도 실천하려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고이즈미 내각의 고민은 이같은 고통이 특히 자민당의 지지 기반에 더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우정사업 민영화나 공공사업 축소 등은 그동안 자민당과 밀월관계이던 각종 업종단체들의 기득권을 위협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를 마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처지다. 부실 정리와 구조 개혁을 통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지 않으면 장기불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나마 고이즈미 내각에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출범 때부터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이즈미는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개혁의 속도와 강도를 조정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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