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85. '법맹'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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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다 보면 사업상 중요한 법률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거나 법 규정을 소홀히 해 낭패를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중소 건설업체인 A사는 1997년 중견 제조업체인 B사에 공장을 지어줬으나 공사대금 중 일부를 받지 못해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 잔금을 지급해 달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지난해 초 B사의 자금사정이 어려워지자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이후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B사가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 최근 부도를 내고 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 A사는 공사대금을 받기 위해 파산채권을 신고했으나 거부당했다.

공사대금 채권은 민법상 3년이 지나면 권리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A사는 법적 조치를 취해 시효를 중단시켜야 했다. 잔금을 마지막으로 요구한 날로부터 6개월 안에 소송을 제기하면 시효는 중단된다. 하지만 A사는 사업상 꼭 필요한 이같은 채권.채무 관련 법률을 소홀히 한 탓에 소중한 권리를 스스로 잃었다.

법에 대한 무지로 인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사례는 또 있다.

40대 사업가 崔모씨도 B사에 원재료를 납품해 채권을 갖고 있었다. 그는 B사가 파산신청을 하자 "내가 납품한 사실은 분명하니까 당연히 파산채권으로 변제받을 수 있을 것" 이라는 생각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나 崔씨는 자신을 빼고 다른 채권자들만 대금을 변제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B사에 대금을 지급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파산채권 신고기간 내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A사와 崔씨는 모두 B사의 채권자였지만 법 절차를 밟지 않아 뼈아픈 손해를 보았다.

법치국가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은 법이다. 기초적인 법 지식이 없을 경우 가혹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신필종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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