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나누는 일은 인간의 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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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20일은 제21회 장애인의 날이었다. 갤럽 조사는 15년간 한국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바뀌지 않았음을 재확인했다. 또 보건복지부 통계는 지난해 해외 입양아가 6백34명인데 비해 국내 입양아는 18명뿐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애덤 킹군과 한국 아이 3명을 입양해 키운 찰스 킹 부부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

특히 그는 수십번에 걸친 장애아 수술이 가장 고통스런 기억이라고 말해 우리를 숙연하게 했다. 이해가 간다. 화상을 입은 6세 여아를 키우던 수양부모가 있었다. '화상정도야' 라며 가볍게 여겼는데 계절이 지날 때마다 엄마는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다.

화상 입은 피부를 긁을 수 없도록 엄마와 아이 손을 테이프로 붙이고 잠자리에 들어도 아침이면 온 몸이 피투성이로 변하는 아이…. 애덤의 수술을 지켜보던 킹 부부의 마음이 그런 것이었으리라. 아이는 수술 후 친부모와 재결합했지만 수양부모는 혹시 지금도 온몸을 긁고 있는 것은 아닌지 봄만 되면 그 아이를 떠올린다.

1989년 선포된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조는 아동은 어떤 형태의 상황에서도 차별 당해선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이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다니고 싶은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장애인이 살고 싶어 지으려고 하는 집을 못 짓게 막는 것도 유엔아동권리협약 위반이고 헌법 위반이다. 외국의 님비(NIMBY)현상은 대부분 환경문제다.

그러나 한국에선 장애인시설.불우시설을 세우려 하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데모를 한다. 서구에서도 갈수록 심각해지는 님비현상에 다양한 대응책이 나오고 있다. 불우이웃 및 장애인 시설을 반대한 학생들은 그 사실이 학생기록부에 영원히 남아 대학.직장 면접 때 타인에게 도움이 될 자질이 없는 인격체로 낙인찍히고 만다.

특히 그런 학생은 기업체의 최고 경영자나 정치인으로선 결격자다. 정치인.경영인이란 자리가 무엇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능력과 인간에 대한 동정심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집값 때문에 불우이웃이나 장애인의 권리를 무시한 사람을 어느 누가 우리의 지도자로 존경하겠는가.

서구인들이 장애인을 입양해서 키우는데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도덕적 의무감 때문인데 기독교에서 비롯된 그들의 도덕은 '남을 돌보는 것이 의무(You are your brother's keeper)' 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이다.

또 하나는 남을 위해 무엇인가 하는 게 바로 사회질서와 관습을 따르는 일이며, 마지막으로 아무리 부와 명예를 얻었어도 남과 나누지 않으면 사회적인 존경을 받거나 상류계층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찰스 디킨스가 쓴 '스크루지' 이야기에 비유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떼돈 벌어 떵떵거리면서 사는 스크루지를 보고 아무도 성공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부는 얻었을지 몰라도 성공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누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성공한 사람, 사랑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서구에서 남을 돕는 일은 선심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의무로 자리잡은 셈이다.

'성공시대' 란 TV프로그램이 있는데 대체로 성공한 사람을 열심히 돈 번 사람이나 열심히 노력해 명예를 얻은 사람, 열심히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한 사람들로 그리고 있다.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고 도덕감이나 인간으로서의 의무 등은 무시한 채 개처럼 벌 생각만 할까봐 두렵다. 출연한 사람들이 모두 나누는 일을 했을 터인데, 그 이야기는 빠지기 일쑤여서 아쉽다. 자칫 그들이 성공과 거리가 먼 사람들처럼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서구인들은 줄기차게 남과 나누고 사회에 환원한다. 사실 그들이 자식에게 유산을 남기고 싶어도 세금 때문에 사회 환원이 오히려 손쉬울지 모른다.

또 사회보장제도 때문에 자식들에게 노후를 의존할 필요가 없어 그들에겐 욕심에 끝이 있다. 그들은 어느 시기에 이만하면 됐다라고 한다. 그러고는 나누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박 영 숙 <한국수양부모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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